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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민 경제부 차장

정부와 여당이 국민의 재산세를 깎아주냐 마냐를 두고 논쟁이 뜨겁다. 최근 정부는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방안을 공개했고, 2030년까지 공시가격을 시세의 90%까지 높일 것을 예고했다. 공시가격이 과세의 근거가 되고 국민연금, 건강보험료 등 준조세 부과의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공시가격 현실화는 국민에게 중과된 납세 청구서를 일찌감치 발송했다는 의미다.

사실 공시가격 현실화는 현 정부 부동산 정책의 핵심 중 하나다. 세금 부과를 통해 주택시장 안정화를 추구해온 문재인 정부가 다주택자들에 대한 세금부담을 늘리기 위해 종합부동산세만 활용한 게 아니다. 이미 2년 전부터 고가 아파트를 중심으로 공시가격 현실화를 추진해왔다. 현시점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공시가격을 중저가 아파트나 일반 주택 등 모든 부동산을 대상으로 올리겠다는 점이다. 정부는 ‘정해진’ 정책 기조대로 추진한다는 원칙론을 내세우지만, 국민의 분노는 임계치에 다다랐다. 1주택자도 세금폭탄을 떠안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 같은 원칙론을 내년 4월 서울시장 등 재·보궐선거를 앞둔 여당이 먼저 걷어찼다. 부동산 실정(失政)으로 떨어지는 지지율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성난 민심을 잠재워야 한다. 성 추문 등 문제를 일으킨 지역에는 후보자를 내지 않겠다고 명시한 당헌·당규를 변경하면서 후보자를 내기로 한 더불어민주당이다. 숱한 비난을 감수하고 후보 공천을 하겠다고 밝혔으니 선거에 이기기 위해선 무엇이든 해야만 하는 절박함이 발동한 것이다.

이런 상황은 일찌감치 예견됐다. 청와대와 정부는 자신들이 밀고 온 규제 중심의 부동산 정책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해왔다. 시장과 국민의 비난도 한 귀로 듣고 흘리며 세제·대출 등을 동원해 강력한 규제 정책을 추진했다. 공시가격 현실화도 이 같은 배경에서 시작된 정책이다. 무리한 임대차 3법 추진으로 인한 전세대란도 “정책 외적 요인 때문” “과도기적 상황”이라며 대책도 내놓지 못하고 뭉개고 있는 이들이 문재인 정부의 관료들이다. 하지만 이들도 득표에 골몰하는 여당의 조급증을 감당하긴 쉽지 않아 보인다. 1주택자들에게 떠넘겨진 세 부담을 해결하지 못할 경우 내년 재·보궐선거는 필패할 수밖에 없다는 여당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무시하긴 힘들다. 조세저항은 표로 나타난다. 정치인들은 표 앞에 무력하다. 이 정치인들이 관료들을 움직이는 상황에서 결국 당의 입장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득표 때문에 원칙을 바꾸는 행태에 대해 앞으로 정부가 어떤 얘기를 할지 궁금하다. 신줏단지 모시듯 한 규제정책 기조를 이젠 선거 때문에 바꿔야 하는 입장이다. 잘못된 좌파들의 케케묵은 이념적 정책이 시장에서 심각한 오작동을 불러일으켰음에도 원칙론을 내세우며 억지를 부린 정부다. 재산세 완화 방안을 두고 어떤 결론을 내리든 문재인 정부의 인사들은 “아무리 나쁜 결과라 할지라도 그 일을 시작한 동기는 선의였다”는 옛말을 되뇔지도 모르겠다. 부동산 문제가 정치 문제로 넘어간 시점에서 정부가 앞으로 어떤 원칙론을 운운할지 국민은 지켜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