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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논단]

독감백신 不安과 올바른 의료 행정

기사입력 | 2020-10-23 11:25

박형욱 단국대 의대 교수 대한의학회 법제이사

23일 오전 11시 기준 독감 백신 접종 후 사망자 수가 34명으로 늘었다. 2016∼2019년 4년간 접종 후 사망자 수는 불과 7명이었다. 국민도 불안하고 의사들도 불안하다. 이날 대한의사협회는 백신 접종을 일주일간 유보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국정감사에서 백신 접종을 중단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상당수 관련 학자는 정 청장의 판단에 동의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백신 접종 직후 발생하는 아나필락시스로 보기에는 접종과 사망과의 시간이 너무 길다. 반대로 백신 부작용인 길랭·바레 증후군으로 보기에는 접종∼사망 시간이 너무 짧고 증상도 다르다. 또한, 백신과 무관하게 우리나라에는 10월 중 일평균 1000명 정도의 사망자가 발생한다. 그중 10건 정도는 예방 접종 후 1일 이내에 사망자로 나타날 수 있다. 요컨대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사건에 불과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백신 접종을 중단 없이 지속하는 게 유일한 정답인가?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만일 부모님이 백신 접종에 관해 물으신다면 좀 더 사실관계가 밝혀질 때까지 약간 미루시라고 말씀드릴 것이다. 그렇게 한다고 무슨 큰 손해를 보는 것도 아니다. 또한, 다음 세 가지 사항이 중요하다.

첫째, 역학적 추론이 실제 인과관계를 확정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역학적으로 추정은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들의 사망 원인은 무엇인가? 아마도 답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때 생명의 문제는 조심하는 게 원칙이다.

둘째, 예방접종은 긴급한 치료가 아니다. 만일 지금 치료를 하지 않으면 환자가 중병에 걸리거나 사망하는 그런 것이라면 현재의 역학적 추론에 비춰도 치료를 강행해야 한다. 그러나 예방접종은 그런 긴급한 치료가 아니다.

셋째, 의과학과 의과학에 기반을 둔 행정은 다르다. 의과학에 기반을 둔 행정은 의과학적 판단에 기초하되 국민과 의사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현 사태는 질병청이 불신을 자초해 벌어진 일이다. 질병청이 배포한 ‘인플루엔자 국가예방접종 관리지침’에는 백신의 냉장 보관에 관한 매우 상세한 규정이 있다. 백신은 섭씨 2∼8도, 평균 5도로 유지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심지어 냉장고에서 온도계의 위치까지 규정해 놓고 있다. 그런데 질병청은 백신이 상온에 노출돼도 문제가 없다면서 접종을 재개시켰다. 제조사의 안정성 시험 결과 백신은 25도에서 최소 14일, 최대 6개월까지 품질이 유지됐다는 것이다.

이처럼 그때그때 다른 것이 질병청의 의과학적 기준인가? 만일 백신의 상온 노출 문제가 불거졌을 당시 질병청이 의료기관에 적용하는 기준대로 단호히 처리했더라면 이렇게까지 사망 사례 신고가 많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의료 행정에서 신뢰는 의과학적 기준의 일관된 적용에서 시작한다. 그런데 이를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7일 국회 국감에서 차량 집회의 위험성에 대한 정 청장의 발언도 의과학적 기준이 아니었다. 당시 정 청장은 “차에서 내리지 않으면 위험이 크지 않다”는 답변을 했다. 차에서 내리지 않아도 위험이 작지만 있다는 것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을 새로운 전파 기전의 발견이다. 이처럼 방역 기준이 의과학에 기초하지 않고 그때그때 달라진다면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예방접종 또한 마찬가지다.

똑같은 로트번호에서도 사망 사례가 다수 보고됐다. 예방접종은 긴급한 치료가 아니다. 좀 더 명확한 사실관계 규명 후 접종을 하는 게 오히려 국민의 신뢰 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다. 독감 백신 접종이 국민의 신뢰 위에 계속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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