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로고


통합 검색 입력
전체
사설
시평
시론
포럼
오후여담
[살며 생각하며]

잘 있거라 정든 옛집

기사입력 | 2020-09-25 11:51

김동률 서강대 교수·매체경영학

사라지기 전 보러 간 고향 옛집
나와 어머니의 체취가 켜켜이

어릴 적 내 모습·역사 선연한데
별만큼 많던 이야기 간 곳 없어

지나간 것은 그리움으로 변해
그날 밤엔 내내 잠들 수 없었네


얼마 전 고향 옛집을 찾았다. 사라지기 전에 꼭 한번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 집, 막상 우리 집이라고 하니 오해가 있다. 정확하게는 내가 자란 집이지만, 엄연히 부모님 집이다. 재개발 광풍이 지방 도시 고향 집에까지 덮쳤다. 당신의 보금자리가 사라지는 것을 완강히 반대하시던 부모님의 버팀은 개발이익의 탐욕에 떼밀려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났다.

르코르뷔지에와 알랭 드 보통은 집을 두고 ‘영혼을 다독이는 공간’이라고 근사하게 정의했다. 하지만 이 땅에서 집은 재산 증식 수단이자 욕망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정든 집도 곧 사라질 것이다. 옆 동네로 이사 가신 어머니는 하루 걸러 옛집에 들렀다. 굳게 잠긴 철제 대문을 잡고 남몰래 훌쩍이다 담장 너머로 집 안을 들여다보고는 발걸음을 돌렸다고 한다. 이제는 할머니이신 당신이 반평생 지켜 온 집이다.

대문이 잠겨 있었으나 발로 거세게 차자 열렸다. 늦은 오후 시간,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집 안은 컴컴하다. 한때는 삼 형제가 법석거렸던 커다란 집은 이제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다. 스위치를 올려도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단전·단수 조치가 취해진 모양이다. 오랫동안 정들었던 집인데도 기분이 이상하다.

철거를 앞둔 집은 여기저기 벽지가 찢겨 있다. 뭐라고 갈겨 써 놓은 붉은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맘이 심란해진다. 신도 벗지 않고 구둣발로 저벅저벅 들어가 내 방을 둘러본다. 텅 빈 방. 천장 구석에는 곰팡이가 피었고, 아침마다 교복을 입고 한껏 폼 내며 비춰 보던 거울은 벽에 그대로다. 군데군데 벗겨져 흉한 모습으로 나를 반갑게 맞는다. 까까머리 사춘기 소년은 간데없고 귀밑머리가 희끗희끗해진 중년의 얼굴이다. 거울 모서리에 붙어 있는 빛바랜 한 장의 사진에는 낡은 젊음이 흑백으로 웃고 있다.

인적이 끊어진 정원은 적요하다. 환청인가. ‘울고 왔다 울고 가는 설운 마음을/ 당신이 몰라 주면 그 누가 알아주나요’. 어머니가 텃밭을 가꾸며 흥얼거리던 노래가 들린다. ‘알뜰한 당신’ 덕분에 발 디딜 틈 없었던 마당은 스산하기만 하다. 피는 꽃보다 지는 꽃이 더 많은 계절, 지난봄에 심었던 깻잎, 호박은 말라 죽었고, 내버려 둔 고추가 시든 줄기에 매달려 가을빛에 젖어 있다. 고추는 점차 태양 빛을 닮아가고 사람들은 더욱 외로워질 것이다. 12월이 되면 크리스마스트리로 사용했던 아기 전나무는 어느새 내 키를 훌쩍 넘었다. 가을날, 황금빛으로 물들던 은행나무는 이제 어른 몸통만큼이나 굵어졌다.

한옥에 살다가 붉은 벽돌 이층집으로 이사 온 그날 밤, 어린 나는 잠을 자지 못했다. 부모님과 동생들도 그랬으리라. 마당에는 목련, 은행나무에, 작은 웅덩이까지 있는, 잘 가꿔진 잔디가 더없이 멋진 양옥이었다. 어린 시절, 늦가을이면 누렇게 말라가는 잔디에 성냥불을 댕기었다. 순식간에 불길이 번지면 덜컥 겁이 나 바지의 지퍼를 급히 내리고 소방차의 호스를 꺼내 진화에 나섰다. 여드름이 가득했던 고1 때였을까. 어느 봄날 중간고사 공부를 하다가 창틈으로 낮게 찾아든 라일락 향기를 여고생 향기쯤으로 상상하며 정신이 혼미했던 기억도 있다.

이 집에서 중학교에 들어가고 고등학교를 다녔고 서울로 유학을 떠나왔다. 결혼을 앞둔 아내를 부모님께 인사시킨다고 두근거리며 찾았던 집이다. 어른이 돼 가정을 이루고 낯선 서울에 살면서도 명절 때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찾았던 집. 추석날 밤에는 온 가족이 모여 잔디밭에서 바비큐 파티를 하고 그새 가장이 된 동생들과 둥근 보름달을 바라보며 밤늦도록 맥주를 마셨다. 호화 주택은 아니지만 집은 제법 품위를 갖추며 우리 가족과 반세기를 함께했다.

잠시, 서쪽 하늘로 사라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컴컴한 방 먼지투성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창 너머로, 홀로 남아 정원을 지키던 키 큰 장미 줄기가 바람에 휘청거린다. 그것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수많았던 우리의 이야기, 우리가 부르던 노랫소리, 우리 형제들이 다투던 울음소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온 가족이 웃고 고함지르고 이야기를 나누던 옛집에는 인적도 없이 정적만이 흐르고 있다. 느닷없이 학창 시절 배운 노래가 생각난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내 나라 내 기쁨 길이 쉴 곳도/ 꽃 피고 새 우는 집 내 집뿐이리/ 오 사랑 나의 집/ 즐거운 나의 벗 내 집뿐이리’.

한참을 혼자서 컴컴한 방 안에 앉아 있다가, 이윽고 집을 나섰다. 문을 닫고 이제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는 옛집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잘 있거라 나의 집아. 아니 우리 집아! 나는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안녕!

최근 지방 나들이 길에 다시 찾은 옛집은 그새 형체도 없어졌다. 불과 몇 달이 되지 않았는데도 위치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내년 이맘때쯤이면 사오십 층 아파트가 들어설 것이다. 아직 공사 기간이 남아서일까, 기초공사에도 들어가지 않은 너른 땅에는 긴 장맛비에 잡초가 무성하고, 군데군데 물웅덩이에는 빗물이 괴어 있었다.

마침내, 우리가 살던 옛집은 죽은 이의 육신이 땅속에서 썩어 흙이 되듯 사라졌다. 지나가 버린 모든 것은 마침내 그리움으로 변한다.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말씀이다. 하기야, 사라지는 것이 어디 옛집뿐이겠는가. 그 짧았던 젊음도 갔다. 갑자기 코끝이 찡해진다. 형해도 없이 사라진 집터에 여린 가을 햇살이 뭉텅뭉텅 쏟아진다. 가을이 깊어간다. 꽃이 피면 꽃밭에서 아주 살 만큼 누나가 좋아했다는 과꽃들도 저 혼자 말라 갈 것이다. 그날 밤도 내내 잠을 이루지 못했다.

많이 본 기사 Top5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 카카오톡

핫클릭 ✓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