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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와 시각]

‘과거’에 기댄 지상파의 실책

김인구 기자 | 2020-09-18 11:46

김인구 문화부 차장

카카오TV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와 MBC의 시네마틱 드라마 ‘SF8’의 엇갈린 흥행은 레거시(전통) 미디어와 뉴 미디어 사이의 간극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지난 1일부터 시작한 카카오TV의 드라마·예능 콘텐츠는 비상한 입소문을 낳으며 13일까지 약 2주일간 2600만 건의 조회 수를 기록했다. 흥행의 원인은 여러 가지로 분석된다. 그중에서도 낯선 소재를 다른 포맷에 담아 선보인 게 두드러진다. 즉, 1회에 70분쯤으로 ‘정형화’돼 있던 드라마를 15분 남짓으로 압축하고, 그걸 또 2∼3분짜리로 토막 내 밀레니얼 세대의 취향과 소비행태에 맞춘 것이다. 이름도 생소한 신인들이 나왔지만, 이틀 만에 100만 건이 넘는 조회 수가 달렸다. 예능도 마찬가지다. 이미 한물간 마스코트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파격을 보여줬다. 레거시 미디어에선 접할 수 없었던 도발적 소재에 시청자들이 열광했다.

반면, 지난 8월 14일부터 매주 금요일 밤 공개된 MBC의 ‘SF8’은 엄청난 물량 공세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이 1%대에 머물렀다. 자사 OTT 채널인 웨이브(Wavve)를 통한 반응도 뜨뜻미지근하다. 지난 7월 공개 이후 지금까지 약 두 달간의 누적 조회 수가 8편 합쳐서 약 80만 건에 그쳤다. 민규동·장철수 등 충무로에서 인정받은 감독들이 참여하고, 이연희·최시원 등 스타 배우들이 출연한 것치곤 초라한 성적표였다. 도대체 무엇이 이들의 결과를 갈랐을까.

지상파가 레거시 미디어 특유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새로움을 추구한다지만 포맷이 기존 관행을 크게 탈피하지 않았고, 타깃 시청자에 대한 분석이 부족했다. 50분짜리 드라마는 지상파에도, 모바일 OTT에도 적합하지 않은 어정쩡한 결과물에 그쳤다.

‘과거’에 사로잡힌 MBC는 다큐멘터리, 그리고 심지어 신입사원 선발 방식에서도 논란을 거듭했다. 다큐플렉스의 두 번째 이야기 ‘설리가 왜 불편하셨나요’는 지난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가수 설리 모친의 발언을 여과 없이 전달해 당시 관계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역효과를 초래했다. 악성 댓글과 루머로 고통받다 숨진 설리를 조명하면서 오히려 또 다른 ‘2차 피해’의 원인을 제공한 셈이다. 시청률만 좇다가 빚어진 행태에 시청자들은 불편함을 드러냈다. 결국 담당 PD는 “미안하다. 누굴 비난하려던 것은 아니다”며 다시보기 서비스를 중단했다.

지난 13일 치러진 신입기자 논술 시험에서는 납득할 수 없는 주제를 선정해 아연실색하게 했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문제를 제기한 당사자의 호칭을 두고 피해자와 피해호소인 중 어떤 단어가 적절하다고 생각하는가’를 묻는 것이었다. 이는 정치권에서도 이미 ‘피해자’로 교통정리가 된 사안. 네티즌이 “이게 문제가 될지 정말 몰랐을까?” “진영논리에 충실한 기자를 뽑고 싶었던 것”이라고 비판하자 MBC 측은 사과하고 재시험을 예고했다.

이 모든 건 입으로만 혁신을 외치고 정작 변화엔 무딘 레거시 미디어의 완고한 시스템, 뿌리 깊은 엘리트주의, 정부와 여당 편향적인 시각 탓이다. 그나마 김태호 PD의 ‘놀면 뭐하니’가 MBC의 중심을 지키고 있어 다행이다. ‘놀면 뭐하니’는 일체의 쏠림을 배제한 채 예능 본연의 임무인 웃음과 공감에 주력하며 사랑받고 있다. 정파를 걷어내고 진정한 혁신을 꾀하지 않는다면 이제 지상파엔 미래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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