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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떠나고 싶다…유보된 열망, ASMR·랜선축제로 달랜다

박경일 기자 | 2020-09-17 10:15

■ 유사여행

카오산 로드 소음·터키 모스크 기도소리…ASMR 통해 세계로


기약 없이 여행을 유보해야 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시대. 여행에 대한 결핍의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여행에 대한 욕망의 크기도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거리 두기’를 잘 지키면서 즐길 수 있는 여행은 없을까. 진짜 여행을 대체할 수 있는 유사(類似)여행으로 즐거움을 느낄 방법은 없을까. 그 방법을 찾아봤다. 실제 여행의 만족도에는 못 미치겠지만, 방법이 없지 않은가. 이렇게라도 달래는 수밖에….

코로나19 이후 여행의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이른바 ‘랜선 여행’의 핵심은 시각(視覺)이다. 가지 못하는 장소의 생생한 사진이나 동영상을 꺼내서 여행을 대체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만족스럽지 않다. 실재하는 공간과 화면으로 보는 공간의 차이는 크다. 사진이나 동영상은 ‘보는’ 정보로는 훌륭하지만, ‘느끼는’ 정보로는 부족하다. 화면을 들여다보면서 여행의 현장감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소리’는 어떨까. 일단 소리는, 여행지에서의 실제 소리나 그걸 녹음해 재생한 것이나 질적으로는 거의 똑같다. 여행지의 소리가 주는 실재감은 이른바 ‘먹방’의 자율감각쾌락반응(ASMR)을 생각해보면 쉽다. 보글보글 찌개가 끓는 소리와 튀김을 ‘아삭’ 하고 씹는 소리가 음식의 식감과 맛을 자극하듯, 태국 방콕 카오산 로드의 소음이나, 터키 이스탄불 모스크의 아침 기도 소리, 전남 순천 선암사 경내에서 담아온 새소리와 물소리는 여행의 실제적 느낌을 효과적으로 자극한다. 소리 자체는 정보량이 적지만, 시각이 전해주지 않는 상상력까지 자극한다. 소리는 여행지에서의 시간(그게 추억이든 계획이든)을 실재감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주요한 요소라는 뜻이다.

소리로 만든 이런 콘텐츠가 네이버 오디오클립에 있다. 오디오클립은 쉽게 말하자면 ‘소리만 있는 유튜브’다. 본래 강연이나 강좌, 책 읽어주기 등의 콘텐츠가 중심인데, 오디오클립 중에는 청량한 자연의 소리를 담은 ASMR도 있고, 여행지의 소리를 담아놓은 클립도 있다. 빗소리, 파도 소리, 모닥불 타는 소리 등을 라이브 방송으로 들려주는 채널도 있다. 아직은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소리로 여행을 상상해볼 수 있는 콘텐츠들도 있다.

네이버 오디오클립 채널 중 ‘같이 떠나요, 소리여행’이란 채널이 있다. 올려져 있는 오디오클립이 12개밖에 안 되고, 지난 3월 중순 이후에는 새 콘텐츠가 없긴 하지만 클립의 내용은 흥미롭다. 태국 방콕 차이나타운의 설맞이 행사 소리, 한낮 방콕 카오산 로드의 소음, 태국 TV의 토크쇼 소리 등이 담겨 있다. 방콕 도심의 오토바이 소리와 행상들의 흥정소리 등을 배경음처럼 듣다 보면 해외여행을 떠나온 느낌이 든다. ‘ASMR 자연의 소리(사진 아래 오른쪽)’ 채널은 요리하는 소리와 빗소리 등의 콘텐츠가 중심인데 여행과 관련된 것들도 있다. ‘부산 가는 KTX’의 소리를 듣다 보면 부산행 기차 안의 느낌이 절로 든다. 풀벌레 소리나 새소리 등 자연의 소리를 담아놓은 오디오클립은 많지만, 이 채널이 다른 채널과 달리 유독 여행을 강력하게 환기하는 이유는 대부분 소리에 ‘장소성’이 부여돼 있기 때문이다. 같은 풀벌레 소리도 이 채널의 클립에는 ‘제주 애월읍 - 바람 좋은 날 초여름 풀벌레 소리’ 등으로 장소가 특정돼 있다. 아예 소리가 아니라 장소를 앞세운 클립도 여러 개다. 이를테면 ‘제주 안덕면 - 메밀밭 옆 나무숲’이란 클립은 바람 소리, 새소리 등이 겹쳐 나온다.

‘라이브’로 소리를 들려주는 ‘월간 소리 풍경(〃왼쪽)’이란 채널도 있다. 여기서 라이브란 실시간 소리를 들려준다는 뜻이 아니고, 미리 녹음한 소리를 특정 시간에 실시간으로 들려준다는 뜻이다. 라이브는 특정한 소리를 집중해서 듣는 게 아니라 백색소음처럼 듣는 게 요령이다. ‘비 그리고 처마 밑에서 쉬고 있는 새’란 제목의 라이브 길이는 무려 약 6시간이다.

이 밖에도 특정 지역의 소리만 담은 채널도 있고, 하나의 계절의 소리에만 집중하는 채널도 있다. ‘내 마음의 푸른 섬’이란 채널은 순전히 제주의 소리만 담고 있다. 천제연폭포의 물소리와 새소리, 화순해수욕장의 파도 소리 등을 들을 수 있다. ‘가을의 소리’란 채널은 가을철의 소리만 클립으로 모아놓았는데, 충남 예산의 ‘키질 소리 - 한티마을’, 전북 장수 ‘벼 베는 소리 - 주촌마을’ 등이 있다. 이런 오디오 채널은 코로나19 이전에는 그다지 인기가 없는 채널들이어서 구독이나 조회 수도 적고 콘텐츠도 부족하지만, 코로나19 시대에 듣는 여행의 소리는 이전과는 감흥이 전혀 다르다. 소리를 통해 느끼는 건 위로와 추억 혹은 기대와 희망이다. 여행을 열망하면서도 가지 못하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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