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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일기자의 여행]

적요한 古宅 풍경, 마음을 다독여 주는듯

박경일 기자 | 2020-09-03 10:59

전남 구례 상사마을의 300년 된 고택, 쌍산재에서 가장 운치 있는 공간인 서당채의 대청마루에 앉아서 책을 읽는 모습. 널찍한 마루는 목침을 베고 누워 낮잠을 자기에도 딱 좋다. 전남 구례 상사마을의 300년 된 고택, 쌍산재에서 가장 운치 있는 공간인 서당채의 대청마루에 앉아서 책을 읽는 모습. 널찍한 마루는 목침을 베고 누워 낮잠을 자기에도 딱 좋다.


푸근한 장독 ‘논산 명재고택’
소박한 사랑채 ‘구례 쌍산재’
낙동강 물소리 ‘안동 농암종택’
600년 古木 있는 ‘서울 창덕궁’


강화된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이제 여행을 잠시 멈춰야 할 때다. 여행은 다시 시작될 것이지만, 다시 시작하게 되더라도 한동안 여행은 조심스러워지겠다. 유례없이 긴 장마에다 잇단 태풍의 내습으로 유독 궂은 날씨가 잦은 올해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고택에서 고즈넉하게 보내는 하루를 생각해본다. 언젠가 여행이 다시 시작되는 날에 조심스럽게 찾아가 보면 좋을 고즈넉한 고택을 골라봤다. 고요한 이른바 ‘언택트’ 여행지다.

# 장독대에 빗방울 소리…명재고택

명재(明齋) 윤증 선생은 조선 숙종 때 한학자. 학문이 일가를 이루었으되 성품이 대쪽 같았으며 대사헌, 우의정 등에 임명됐으나 모두 사양하고 끝내 벼슬길에 나서지 않았다. 고택은 윤증의 성품대로 간결하고 품위 있다. 그러나 정작 윤증은 이 고택에서 기거하지 않았다. 허름한 초가에서 거처하던 스승을 위해 제자들이 이 집을 지어 바쳤지만, 평생을 청빈하게 살아왔던 윤증은 “큰 집이 내게 과분하다”며 초라한 집에서 나오질 않았다. 고택은 윤증이 기거하지 않았기에 더 감동적이다. 대부분의 고택이 관리만 하고 살지 않지만, 명재고택은 후손이 직접 살며 관리를 하는 집이라 살아있는 느낌을 준다. 건축물의 배치로 만들어낸 공간의 과학적 원리와 한국적인 미감을 감상하는 재미가 각별하다. 한옥체험을 겸해 숙박할 수 있는데 미리 연락해 안내를 부탁하면 집에 대한 내력부터 건축적 특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설명을 듣고 나면 고택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새삼 더 느끼게 된다. 고택 담장 안에는 줄지어 장독이 들어서 있다. 장독대에 후드득 비 떨어지는 모습을 툇마루에 앉아 감상하는 맛이 그만이다. 명재고택 041-735-1251


# 대청마루에서 낮잠 자는 맛…쌍산재

지리산 자락인 전남 구례군 마산면 상사마을에는 6대를 이어 내려온 고택 쌍산재가 있다. 대문 앞에는 물맛이 좋기로 이름난 당몰샘이 있다. 문을 들어서면 안채와 사랑채가 모여 있고, 안채를 지나 더 깊이 들면 대나무 숲길을 지나 서당채가 서 있다. 안채와 사랑채의 소박하면서도 정갈한 모습도 좋지만, 쌍산재에서 가장 매력적인 공간은 바로 서당채다. 널찍한 대청마루를 가운데 두고 양쪽에 방을 앉혔다. 서늘한 기운의 대청마루에서는 목침을 베고 낮잠을 한숨 자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서당채 옆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영벽문이란 이름의 작은 샛문을 나서면 자그마한 사도저수지가 눈앞에 펼쳐진다. 저수지를 따라 산책하는 맛이 각별하다. 방마다 화장실, 주방, 에어컨 시설 등을 들여놓았지만 툇마루며 대청마루, 방 등은 옛 모습 그대로다. 숙박객들을 위해 텃밭에서 푸성귀 등을 마음껏 따 먹을 수 있도록 해놓았다. 10만∼20만 원. 구례 일대는 명소들이 즐비하다. 화엄사가 지척이고, 섬진강도 금세 가 닿을 수 있다. 오산의 사성암도 빼놓을 수 없다. 일부 지역이 장마 때 수해를 당하긴 했지만 섬진강 변의 풍경은 푸근하다. 쌍산재 010-3635-7115

# 물소리·새소리 마음이 촉촉…농암종택

경북 안동의 농암종택은 조선 연산군 때 사간원 정언을 지냈던 농암(聾巖) 이현보의 종택이다. 본래 종택이 있던 분천마을이 1976년 안동댐 건설로 수몰되면서 안동 땅 여기저기에 흩어져 옮겨진 종택과 사당을 영천 이 씨 문중의 종손이 청량산과 낙동강이 어우러지는 도산면 가송리 지금의 자리에다 10여 년 동안 옮겨 모았다.

농암종택은 비가 오는 날 가면 금상첨화다. 구름이 내려앉은 청량산 줄기가 수묵화를 그려내고, 낙동강 물소리는 더욱 세차다. 종택에서 농암 선생의 손때가 묻은 별채 긍구당의 정취가 으뜸이다. 긍구당은 고려 때 농암의 고조부가 지은 소박한 건물로 농암이 태어나고 자란 종택의 별채다. 당호는 ‘조상의 유업을 잇다’라는 뜻. 넓은 마루에 앉으면 강물 소리, 새소리로 마음이 촉촉해진다.

낙동강 변의 애일당(愛日堂)은 구순이 넘은 부친을 위해 농암이 지은 건물. 애일당 뒤편 수성각에 오르면 세찬 물소리와 함께 낙동강과 벽련암이 펼쳐진다. 종택의 강변으로 내려오면 이번에는 퇴계가 청량산을 오갈 때 밟았다는 퇴계오솔길(예던길)과 이어진다. 오솔길이 지나가는 강 건너편에는 단아하게 앉은 정자 고산정이 있다. 퇴계의 제자가 500여 년 전에 지은 정자인데 산줄기, 강물과 어우러진 경관이 더없이 빼어나다. 농암종택 054-843-1202

# 고궁에서 듣는 빗소리…창덕궁 후원

서울 도심에서 고즈넉한 정취를 만날 수 있는 명소가 창덕궁이다. 창덕궁은 강화된 코로나19 대책으로 10인 이상 단체관람은 불가능하지만 개별관람은 허용하고 있다. 인적이 드문 창덕궁에서는 차분하게 깊어진 궁궐을 볼 수 있다. 창덕궁의 매력은 날씨를 가리지 않는다. 궁의 정면 격인 돈화문에 들어서 금천교를 건너면 차례로 만나는 인정전과 선정전, 희정당이 그윽하다. 단청을 하지 않은 소박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낙선재와 그 주변의 아름다움도 빼놓을 수 없다. 창덕궁에서 가장 빼어난 풍경을 보여주는 공간은 단연 후원이다. 안내해설사와 동행해야 하는 후원관람은 ‘거리 두기’ 수칙에 따라 회차별 40명으로 축소해 운영하고 있다. 창덕궁 후원은 조성을 시작한 1406년부터 600년 넘게 전지가위 한번 대지 않았다. 도심에서 300년 넘은 고목이 70그루 이상 늘어선 모습을 여기가 아니면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후원의 중심은 부용지. 부용정이 물 위에 반쯤 뜬 채로 있고, 맞은편에 주합루가 연못을 지키듯 서 있다. 왕의 휴식처이기도 했고 선비들이 과거를 치르기도 했던 이곳은 이제 누구나 쉴 수 있는 공간이 됐다. 존덕정에서 옥류천으로 가는 길 깊숙이 들어선 후원의 마지막 영역인 소요암. 이곳에는 너럭바위에 홈을 파고 물길을 돌려 만들어낸 작은 폭포가 있어 비가 오면 더 운치 있다. 창덕궁 02-3668-2300

글·사진 =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장독대로 가득한 충남 논산의 명재고택 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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