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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부추전 부치는 소리

기사입력 | 2020-08-28 11:21

김동률 서강대 교수·매체경영학

煎 한번 부쳐보라는 아내 말에
부랴부랴 부추 사다 요리 도전

둥그런 모양 간데없고 찢어져
아이들 “미개인 음식 같다” 질색

“그럼 너희들은 피자 시켜먹어”
착잡하고 안타까운 마음 가득


여름의 끝자락이다. 어제 일은 가물가물한데 아주 먼 유년의 풍경은 또렷하게 떠오른다. 칼국수를 만드는 어머니 모습이다. 선친은 칼국수를 좋아하셨다. 그런 아버지를 위해 어머니는 여름날이면 종종 칼국수를 준비했다.

밀가루를 반죽해 적당히 발효되기를 기다렸다. 제법 뜸 들인 반죽을 홍두깨로 얇고 평평하게 밀었다. 이어 계란말이 모양으로 정렬시킨 뒤 일정한 간격으로 쓱쓱 썰었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에서 한석봉 어머니가 겹쳐 보인다. 코스프레인 셈이다. 진지하다 못해 무표정한 얼굴이다. 얇지도 두껍지도 않게 일정한 크기로 잘린 국수는 서로 붙지 말라고 밀가루가 뿌려져 소쿠리에 담긴다. 멸치 육수가 적당히 끓으면 애호박과 대파, 감자 등을 숭숭 썰어 넣어 국물맛을 내었다. 여름날, 한옥 마루에 앉아 쏟아지는 빗줄기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먹던 엄마손 칼국수의 맛은 지금도 살아 있다. 우연히 요하네스 브람스의 ‘비의 바이올린’을 듣노라면 불현듯 그날이 생각나 콧등이 시큰해진다.

나는 음식을 가리지 않고 먹는 편이다. 집에서나 밖에서나 주는 대로 먹는다. 그런 내가 칼국수를 좋아하는 것은 아마 유년의 기억이 한몫했을 것이다. 탁한 고깃국물 육수보다는 멸치 국물에다 채소로 맛을 낸 담백한 칼국수는 여름 한 철 별미다. 그러나 역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부추전이다. 그래서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오자마자 부추를 심었다. 부추는 생명력이 무척 강하다. 무성한 잡초 속에서도 꿋꿋이 잘 자란다. 가위로 밑동을 살벌하게 잘라야 오히려 더 잘 자란다. 겨울을 난 부추가 맛있고 또 가장 영양가가 있다고들 하지만 부추전은 장마철이 제격이다. 부추전 부치는 소리가 장맛비 오는 소리와 닮았다고 해서 비가 오면 생각나는 음식이 부추전이다. 막걸리를 곁들이면 더욱 좋겠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부추전은 내가 부쳐야 한다는 점이다. 아내는 요리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스스로도 먹는 것은 좋지만 하는 것은 별로라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 집 밥상은 아주 소박하다. 밥, 된장국, 김, 두부 조림, 김치(가끔) 정도다. 김치는 어쩌다 내가 외부에 조달해 오는 것에 의존하고 있다. 아내가 김치를 담그는 경우는 드물다. 유년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나는 먹는 음식이 단조롭다. 회나 육류 등 화려한 음식보다는 김치를 좋아한다. 하지만 행여 아내의 심기를 거스를까 봐 내색은 못 한다. 밖에서는 식생활 신조가 ‘험블 앤드 심플’(humble & simple·소박하고 간단하게)이라고 엄청 잘난 척하지만 사실은 자기 합리화나 다름없다. 맛있는 음식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은인자중 끝에 지난가을 일을 저질렀다. 김치 없는 밥상을 탈출하기 위해 학원에 등록한 것이다. 지자체와 한식연구소가 공동 운영하는 10주간의 김치교실 수강생은 30여 명, 그중 남자는 달랑 2명이었다. 그나마 한 분은 오래전에 은퇴한 어르신이고, 대부분 결혼을 앞둔 이삼십대이거나 중년여성들이었다. 김치 종류가 그렇게 많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어느 날, 묵은지 김치전 시간에 배운 부추전 부치기를 나의 필살기로 정했다. 어색해하면서도 재미있는 강의가 끝나면 그날 담근 김치를 병에 담아 집으로 가져왔다. 냄새날까 봐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정성껏 들고 온 김치도 나 혼자 차지다. 아이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내 솜씨에 회의적인 아내는 관심도 보이지 않는다. 두 달 반을 혼자서 먹었던 씁쓸한 기억만 남았다.

그래도 난 포기하지 않는다. 이때 꼭 필요한 말이 어니스트 헤밍웨이 형님의 말씀이다. ‘인간은 부서질지언정 절대 굴복하지 않는다.’(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 이 말을 되새기며 마음을 다잡게 된다. 드디어 때가 왔다. 장마 블루란 신조어까지 나오며 지루하던 어느 비 오는 주말이었다. 부추전 부치는 실력을 자랑할 기회를 잡았다. 한번 부쳐 보라는 아내의 허락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애지중지 키운 정원 구석의 부추는 긴 장마통에 훌쩍 자라 너무 드셌다. 게다가 꽃까지 피어 전을 부치기에는 이미 맛이 갔다. 부랴부랴 인근 재래시장에서 잘 다듬어 놓은 부추를 사다가 전 부치기에 들어갔다. 준비에 실패하면 안 된다. 내 실력을 스스로도 못 미더워 엄선한 유튜브를 앞에 놓았다. 복습을 시작했다. 부추는 여러 번 씻어 탈탈 털어 물기를 제거한다. 옛말에 부추는 씻은 물도 버리지 말라고 했을 정도로 몸에 좋다지만, 부침개용은 물기가 없어야 한다. 중불에 프라이팬을 충분히 달군 뒤 기름을 넉넉하게 두른다. 팬이 뜨거워지면 부추를 가지런히 놓고 미리 버무려 놓은 부침 가루 반죽을 한 국자씩 떠서 동그랗게 퍼지게 한 뒤 앞뒤로 노릇노릇하게 부친다. 기름이 충분히 달궈졌을 때 올려야만 바삭하게 구울 수 있다 등등.

그러나 말이 쉽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뜨거운 부추전을 뒤집는 일은 상당한 내공이 필요하다. 결국, 맛있게 부쳐진 둥그런 모양의 부추전은 간데없고 갈기갈기 찢어져 조각으로 익게 된다. 보기에도 민망하다. 막상 식탁에 올렸더니 아이들은 뜨악해 한다. 풀 같은 것을 반죽과 익힌, 미개인 음식 같다며 질색이다. 아버지의 정성도 모르는 괘씸한 녀석들 같으니…. 불만은 점차 부풀어 폭발 직전이다. 아니 자기들은 피자 좋아하면서 ‘부추전이 어때서’라는 외마디가 혀끝에 맴돌았지만 참는다. 내 눈치만 보는 아이들에게 설움과 비장함이 가득한 목소리로 결국 한마디 한다. ‘그럼 니네들은 피자 시켜’. 착잡하고 안타까운 마음만 가득했던 우리 집 풍경이다. 여름이 저만큼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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