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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환(1915∼1996)

“방방말타기 하러 간다고 할 때 다 보내줄걸.”

제가 유치원생일 때는 방방아줌마가 오면 친구들과 말타기 리어카에 가서 장난감 말을 타고 오는 게 제일 큰 재미였어요. 제자리에서 스프링 달린 말을 타는 게 뭐 그리 재미있었는지 항상 할아버지를 졸라 500원을 받아서 타러 갔지요. 조금 자라 초등학생이 된 후 더 이상 할아버지를 조르지 않자, 못내 서운하셨는지 그것도 한때였다며 할아버지께서 하셨던 말씀이에요.

저에게 할아버지는 늘 무한한 사랑의 상징과도 같은 분이에요. 흔히 부모는 자식이 가끔 미울 수 있어도 할아버지, 할머니는 손자 손녀가 무조건 사랑스럽다는 말이 있잖아요. 저에게도 역시 그런 할아버지가 계셨기에 아직도 이렇게 사랑받았다는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방과 후 20여 분을 걸어 할아버지 댁으로 가던 저를 할아버지는 매일같이 걱정하셨어요. 대문 앞에 의자를 가지고 나와 앉아서 골목 끝을 바라보며 기다리고 계셨죠. 반가운 기색이나 특별한 말 없어도 늘 그 자리에 지팡이를 짚고 나와 생밤을 한 컵 깎아서 기다리시던 할아버지 모습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아드득 아드득 생밤을 깨물며 할아버지 품에 안기곤 했는데 말이죠.

작년 추도예배 때 할아버지가 생전에 즐겨 하셨던 찬양을 부르는데 할아버지가 옆에서 불러주셨던 것이 생각나 많이 그리웠습니다. 나중에 치매로 고생하실 때에도 제 또래 여자아이만 보면 제 이름을 부르셨던 할아버지. 거동이 불편하셨던 할아버지와 함께했던 동네 산책, 과자를 사주시던 동네 슈퍼, 지금은 새로 아파트가 들어서 깨끗한 도로로 정비됐지만, 가끔 강아지를 데리고 그 주변을 산책할 때면 할아버지가 그립습니다. 사랑하는 할아버지, 어떠한 모습이라도 사랑스럽게 봐주셨던 할아버지가 계셨기에 지금도 저는 마음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어요. 늘 할아버지가 응원해주신다는 생각으로 앞으로도 열심히 살겠습니다.

손녀 이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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