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본래의 설립 목적에서 이탈할 위험성이 보인다. 현재의 국정원은, 김대중 대통령이 1999년 1월 중앙정보부와 국가안전기획부 시절의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내고 명실상부한 대공(對共)·방첩(防諜) 조직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출범시켰다. 국정원법에 규정된 고유 직무는 대공, 정부전복, 방첩, 테러, 국제범죄조직과 관련된 국내외 정보 수집, 그리고 내란·외환·반란죄와 국가보안법 위반죄 수사이다. 어디에도 북한과의 협상을 맡는다는 조항은 없다.

그런데 국정원이 4일 단행한 조직·인사 개편을 보면 우선, 2차장이 전담하던 대북 업무가 1차장 소관의 해외 업무와 통합되면서 사실상 비중이 낮아졌다. 국내외 정보 업무의 통합성을 높였다고 할 수도 있지만, 통일 때까지 국정원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대북 정보 수집이라는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기획조정실장에 박선원 현 국정원장 외교안보특보가 기용됐다. 박 실장은 반미학생운동조직인 연세대 ‘삼민투’위원장이었고, 1985년 미국문화원 점거 사건의 배후였을 정도로 반미(反美) 성향이 강한 것으로 인식됐다. 노무현 정부의 청와대 비서관 시절 발생한 자주파·동맹파 충돌 때 자주파로 분류됐다. 2006년 김승규 당시 국정원장 사퇴를 몰고 온 일심회 간첩단 사건 수사 때 연루 의혹도 제기됐다. 국회에 출석해 “관련이 없다”며 부인했지만, 일심회 수사가 흐지부지돼 의혹은 여전히 남아 있다.

박지원 국정원장이 2000년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 등 햇볕정책 신봉자로서 친북(親北) 정책에 적극적임은 국내외에 잘 알려져 있다. 오죽하면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인사청문회에서 “내통” 표현까지 사용했겠는가. 지난달 30일 당·정·청은 국정원 수사권을 경찰로 넘기고 대외안보정보원으로 개명한다는 합의까지 발표했다. 간첩을 잡지 못하고, 친북반미 인사가 주도하는 것으로 비치면 차라리 ‘대북협력원’으로 바꾸는 게 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