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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우 논설고문

CNN, 文대통령 페미니즘 비판
박원순 전 시장 성추행에 침묵
평소의 여성人權 강조와 다르다

어느 쪽이 진심인지 혼동되는
대통령 이중적 발언과 행동들
일관성 리더십에 문제는 없나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7년 성(性)평등 공약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스스로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대통령이 돼서도 이런 자세는 여전했다. 2018년 10월 경찰의 날 기념식에서 그는 “여성의 삶과 인격을 파괴하는 범죄들을 철저히 예방하고, 발생한 범죄는 끝까지 추적해 반드시 법의 심판대에 세워주길 바란다”고 재삼 강조했다. 그런데 미국 CNN 방송이 며칠 전 대통령의 페미니즘을 직접 겨냥, 비판하고 나섰다. 문 대통령이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자살로 이어진 여비서 추행은 물론 안희정 전 충남지사, 오거돈 전 부산시장 사건에 침묵으로 일관한다는 것이다. 이런 보도를 보면서 필자가 느낀 것은 ‘뼈아픈 지적을 했네’라기보다 오히려 문 대통령에 대한 CNN의 이해가 아직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몇 가지 뒷받침되는 예를 들어보겠다.

문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5·18 민주화운동 정신을 헌법 전문에 구현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중국 정부의 홍콩 시민 인권 탄압에 대해 “5·18 탄압에 분노한다면 당연히 홍콩 시민의 주장을 지지해야 한다”는 국내 여론에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인권 이야기가 나온 김에 좀 더 해보자. 지난 2019년 말 베트남에 억류돼 있던 탈북민 13명이 북송 위기에 처한 적이 있다. 당시 탈북민들은 여성 2명이 자살을 시도할 정도로 공포에 질려 있었으나 다행히 미국 정부의 도움을 받아 안전한 곳으로 피신할 수 있었다. 반면 한국 정부는 그들을 돕는 일에 “주저하는 것처럼 보였다”.(월스트리트 저널)

문 대통령은 지난 1996년 페스카마호 사건 범인들의 변호를 맡았다. 한국 원양어선에 탄 조선족 범인 6명이 한국인을 포함한 선원 11명을 잔인하게 살해해 바다에 버린 충격적 사건이다. 문 대통령은 당시 이들을 변호하면서 “동포로서 따뜻하게 품어줘야 한다”면서 “살인마도 사람이고, 인권이 있고, 재판받고 변호 받을 권리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동해상에서 북방 한계선을 넘어왔다가 한국 정부에 의해 강제 북송당한 북한 선원 2명에 대한 처우는 페스카마호 때와 전혀 다르다. 두 사람은 북한에서 살인을 저질렀다는 한국 정부의 주장과 달리 북한 주민 16명을 탈북시키려다 북한 보위부에 체포될 위기에 처해 탈출했던 청년들로 알려졌다. 한국 정부는 이들 2명을 북송하는 과정에 손발을 묶고 눈까지 가렸다.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겨우 안대를 벗은 이들은 북한군의 모습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 풀썩 주저앉았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 박근혜 정부를 비판하면서 “집권 3년 만에 나라 곳간이 바닥나 국내총생산(GDP) 대비 40%에 달하는 국가채무를 국민과 다음 정부에 떠넘기게 됐다”고 일갈했다. 그런 문 대통령이 작년 5월에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는 “국가채무비율 40%가 마지노선이어야 할 근거가 무엇이냐”고 따져 물었다. 대통령은 출범 초기만 해도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빗대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을 ‘토건(土建)삽질’이라고 맹비난했다. 그런 그가 지난 총선을 앞두고는 24조 원에 달하는 초대형 SOC예산을 편성했다. ‘생활 SOC’는 토건삽질이 아니라는 논리와 함께.

문 대통령은 집권 이후 법원·검찰·경찰·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을 자기 친위 세력으로 채웠고, 심지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까지 만들면서 삼권분립의 토대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 헌법에도 없는 공수처가 설치되면 헌법기관인 검찰마저 휘하로 들어간다. 그런 그가 올해 초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는 “권력기관 개혁의 핵심은 견제와 균형을 통한 권력남용의 통제”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진보계의 원로 정치학자인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공수처 관련법이 “지극히 위험하다”면서 “공수처는 반대 당(黨) 인사, 또는 정치적 비판자에 대해 공적, 사적으로 제재를 가하기 쉽다”고 경고하고 있다.

앞서 CNN 보도는 문 대통령의 여성 인권에 대한 과거 발언과 작금의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그에 비해 필자의 관심 방향은 좀 다르다. 분명히 어느 한 편은 본심인 것 같은데, 과연 그게 어느 쪽이냐는 것이다. 아니면 양쪽 다 본심이라고 믿는 건 아닌지 묻고 싶다. 이 같은 의문은 국가 지도자로서 당연히 갖춰야 할 인성(人性)과도 연관되는 것이다. 필자는 그 점에 회의(懷疑)를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