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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 서강대 교수·매체경영학

비대면 강의로 보낸 한 학기
수강생 딱 한 번 만나고 종강

누구나 빛나는 별 바라본다
경계가 묘한 행복과 불행…

코로나 덕에 공기는 맑아져
서울 하늘에 별이 나타난다

종강이다. 한 학기가 끝났다. 물론 종강 이후에도 캠퍼스에서 문득문득 만나게 된다. 그래도 종강은 헤어짐으로 인해 묘한 느낌을 준다. 보람보다는 미련과 아쉬움이 큰 학기였다. 비대면 강의, 얼굴도 한번 못 보고 헤어지기가 섭섭했다. 그래서 과제물은 연구실에서 일대일로 받기로 했다. 막상 찾아오는 수강생을 만나니 더 서먹서먹하다. 대면 강의 때와 달리 서로 간의 라포르(rapport)를 전혀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학생들도 많이 어려웠을 것이다. 영상으로만 보던 교수와 강의실에서 자주 만나던 교수와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 한 학기 수업, 그러나 오늘 딱 한 번 잠깐 보고 헤어진다. 그것으로 끝이다. 비대면 강의에서 사제지간이란 없다. 단지 지식을 수수(授受)하는 관계, 곧 남남이 된다. 이 또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가져온 새로운 풍경이다. 이제 인류는 가 보지 않은 길에 들어섰다.

코로나19로 우울해하는 사람이 많다. ‘코로나 블루’란 신조어까지 나올 만큼 세상은 음울하다. 별것도 아닌데 자주 울컥해진다. 모두가 위축돼 있다. 누구나 한 번쯤 불행을 겪어 봐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래야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건 아니다. 발도 없는 바이러스 하나가 온 세상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초연결 사회 덕분이다. 인간의 지나친 탐욕이 생태계의 조정 기제를 불러왔다는 해석에 숙연해진다. 산업혁명 이후 숨 가쁘게 달려온 인류 문명의 숨 고르기쯤으로 봐야 할까? 문제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구분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내가 가해자이면서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황당한 현실에 우리는 망연자실한다. 이른바 ‘코로나 이생망’이다.

인간의 불행과 행복에 관해 가장 이해가 쉬운 해석은 영화 ‘노팅힐’에 나온다. 평범한 서점 주인 윌리엄 태커(휴 그랜트)와 세계적인 배우 애나 스콧(줄리아 로버츠)이 주인공이다. 그저 그런 멜로 영화가 오랫동안 사랑받는 대목은 이른바 ‘불행 털어놓기’ 생일 파티 장면에 있다. 마지막 남은 브라우니 한 조각을 두고 가장 불행한 사람이 먹는 거로 하자며 모두가 자신의 불행을 고백한다. 이혼의 상처와 꿈조차 없는 주인공 윌리엄의 이야기가 끝나자 브라우니는 당연히 윌리엄의 손으로 갔다. 그 순간 애나가 나선다. 다이어트 때문에 늘 굶주렸고 고통스러운 성형을 두 번이나 했고 잊힐까 두려워하는 깊은 속내를 털어놓는다. 불행이라곤 전혀 없을 것 같은 그가 가장 불행한 것으로 정리된다. 마지막 브라우니는 애나에게 간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가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 나름으로 불행한 것이다.” 톨스토이가 이미 장편 소설 ‘안나 카레니나’ 첫 구절에서 명쾌하게 말했다.

불행과 행복의 묘한 경계를 나타낸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아일랜드 출신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다. 짧은 얘기다. 어느 늦가을 저녁, 남쪽을 향하던 제비가 행복한 왕자의 동상 발등에서 잠을 청하는 순간,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진다. 살아생전 불행을 몰랐던 왕자는 죽어 동상이 돼 높은 곳에 자리 잡자 세상의 온갖 슬픈 일을 지켜보게 된다. 왕자는 이제 더 이상 행복하지 않다. 제비에게 부탁해 자신의 몸을 치장한 수많은 보석을 떼 내어 그들에게 나눠준다. 하지만 남으로 날아갈 시기를 놓친 제비는 왕자의 모든 보석을 가난한 이들에게 전해주기를 끝냄과 동시에 동상 발아래서 얼어 죽는다. 봄이 오자 마을 사람은 한때 마을의 자랑거리였던 왕자의 동상이 흉측한 모습으로 변해 있다며 부숴 버렸다. 이 모습을 지켜본 하느님이 천사더러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두 가지 즉, 제비와 왕자의 심장을 가져오게 해서 하늘나라에서 행복하게 살게 했다는 것이 줄거리다.

오스카 와일드의 이 작품은 19세기 말 산업혁명과 함께 불어닥친 당시 영국 사회의 이기주의·물질주의를 날카롭게 비판하며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묻고 있다. 오스카 와일드도 노팅힐의 여주인공만큼이나 행복과 불행이 겹쳐 보인다. 동시대의 가장 사랑받는 작가이자 유럽 귀부인들을 열광케 한 댄디 보이였지만, 동성애로 인해 추방당해 파리의 하수구 시궁창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파리 페르 라세즈 공원 그의 묘비는 전 세계에서 몰려온 광팬들의 키스로 빨갛다. 루주로 인해 대리석 비석이 산패되자 앞에 대형 유리막을 설치했고 그 유리막 역시 키스로 덮여 있다. 불행과 행복을 넘나든 작가다. 추리소설의 대가 스티븐 킹이 파리 방문 때 기자회견에서 일정을 묻자 답했다. “파리에서의 일정요? 당연히 젤 먼저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오스카 와일드의 비석에 키스부터 해야죠”라고. 나도 ‘행복한 왕자’를 좋아한다. 그래서 런던에 갈 때마다 트래펄가 광장에 있는 그의 검은 화강암 시비를 찾는다. 비록 생전엔 조국으로부터 배척받았지만, 사후 100여 년 만인 1998년 영국 노동당 정부의 주도로 트래펄가 광장에 시비가 세워짐으로써 명예를 회복했다.

얼굴도 모른 채 한 학기를 끝내는 그제 수업이 너무 아쉬웠다. 그래서 마지막 동영상 강의 맨 끝에 한 줄 붙였다. “We all in the gutter but some of us looking at the stars.”(우리 모두 진흙탕에 뒹굴고 있지만 그래도 그 누구는 밤하늘의 빛나는 별을 바라본다). 와일드 시비에 있는 구절이다. 나는 오늘 이 구절을 비대면 종강의 고별사로 갈음하면서 한 세기 전 와일드나 영화 ‘노팅힐’이 주는 행복과 불행의 메시지에 대해 생각해 본다. 코로나19로 우울하지만, 덕분에 공기는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서울 하늘에도 가끔 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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