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1989년 마스터스 첫 번째 연장전이 벌어진 오거스타내셔널골프클럽 10번 홀에서 미국의 스콧 호크가 60㎝ 파퍼트를 놓친 뒤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다. 작은 사진은 이를 지켜보는 영국의 닉 팔도. 유튜브 캡처

이후 메이저 우승 없이 8승 추가
“유명세 시달리겠단 잡생각 들어
어드레스 푼 게 실수로 이어져
하지만 우승 못해 얻은 게 많아”

1989년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메이저대회 마스터스. 60㎝가 안 되는 퍼트를 놓쳐 우승을 날린 경우가 발생했다. 제53회 마스터스에서 마지막 날 홀을 남기고 4명이 혼전을 펼치고 있었다. 17번 홀(파4)을 마치고 4명이 5언더파로 치열한 각축을 벌였다.

미국의 스콧 호크는 16번 홀(파3)까지 6언더파로 2위에 2타 앞선 단독선두였지만 17번 홀에서 보기를 범해 추격의 빌미를 제공했다. 영국의 닉 팔도, 미국의 벤 크렌쇼, 호주의 그레그 노먼이 17번 홀에서 약속이나 한 듯 버디를 잡아내 5언더파 공동선두가 됐다.

마지막 18번 홀(파4)에서 노먼과 크렌쇼는 보기에 그쳤고 팔도와 호크는 파를 지켜 연장전에 나갔다. 연장전은 10번 홀(파4)에서 시작됐다. 둘의 티샷은 페어웨이에 안착했다. 하지만 팔도의 세컨드샷이 밀려 공이 우측 벙커에 빠졌다. 벙커 샷도 홀에 못 미쳐 보기로 마감했다. 반면 호크는 두 번째 샷을 홀에서 7m쯤 떨어진 그린에 올렸다. 버디 기회. 팔도가 실수했기에 호크는 2퍼트만 하더라도 파 세이브로 우승할 수 있었다. 호크의 첫 번째 퍼트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무난하게 홀 60㎝ 앞에 멈췄다. 탭인이면 우승. 호크는 처음으로 메이저대회 우승을 눈앞에 뒀다.

그런데 지나치게 긴장한 탓일까. 그 짧은 퍼트를 호크는 마치 롱 퍼트의 라이를 읽듯이 몸쪽으로 당겼다. 홀을 향해 직선으로 치면 가볍게 집어넣을 수 있었지만, 호크가 친 공은 어이없게 홀 왼쪽으로 지나쳐 오히려 50㎝ 정도 도망가고 말았다. 간신히 3번째 퍼트를 한 호크는 어이없는 보기로 팔도와 동타가 됐다. 팔도는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호크는 낙담했다.

연장 두 번째인 11번 홀(파4)에서 팔도는 2온에 성공했지만, 호크는 공이 밀려 그린 오른쪽 지역으로 벗어났다. 호크는 3번째 샷을 홀에 붙이면서 팔도를 압박했다.

그러나 팔도의 10m 거리 롱 퍼팅이 거짓말처럼 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버디였다. 팔도는 한동안 멍하니 홀을 바라봤고, 호크는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호크가 힘없이 팔도에게 다가가 마지못한 악수를 청했다. 이날 이후 호크는 메이저대회 우승의 기회를 얻지 못했다.

이미지 크게보기 이인세 골프역사칼럼니스트

25년이 흐른 뒤 호크는 “당시 마스터스의 패배가 인생에 그다지 손해를 보게 하지 않았다”고 덤덤히 밝혔다. 호크는 “우승한 뒤 잃어버리는 일상보다 오히려 우승을 못 하고 얻게 된 것이 더 많았다”고 회고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호크는 마스터스가 열린 오거스타내셔널골프클럽의 우승자 전용 라커룸에서 혼자 옷을 갈아입기보다 다른 선수들과 함께 클럽하우스에서 웃고 떠드는 것이 더 좋았다고 설명했다. 호크는 “마스터스 이전에는 PGA투어 3승에 그쳤지만, 마스터스를 놓친 이후 15년 동안 PGA투어에서 8승을 더 올릴 수 있었다”면서 “메이저대회 우승을 놓쳤다고 낙담하고 후회할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호크는 그날 눈을 감고도 집어넣을 수 있는 거리의 퍼트를 실수한 것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사실 퍼팅에 집중하지 않았다. 마스터스에서 우승하면 졸지에 유명인이 돼 끌려다닐 것이란 쓸데없는 잡생각이 떠올랐고, 어드레스를 풀고 잠시 뒤로 물러났다 다시 어드레스를 한 것이 실수라면 실수였다. 그대로 한 번에 밀어 넣었어야 했다. 하지만 그냥 한 차례 실수였을 뿐이고 이제까지 선수생활을 이어온 데에 부정적인 영향은 주지 않았다”고 했다.

호크는 1955년생이며 지난해 63세의 나이로 챔피언스투어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골프역사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