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사우디·러 속셈 제각각

트럼프 ‘셰일업체 살리기’
빈살만 ‘왕위 승계에 활용’
푸틴 ‘미국기업 타격 포석’

대규모 감산 합의 미지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와중에 시작된 사우디아라비아·러시아 간 증산전쟁에 본격 개입하면서 바닥을 뚫고 추락하던 국제유가가 흐름을 반전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미국과 사우디, 러시아 등이 모두 유가 안정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지만 세계 원유시장이라는 ‘파이’가 줄어든 상황에서 대규모 감산에 최종 합의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2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통화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와의 통화 사실을 전하며 원유 감산 기대치로 1000만∼1500만 배럴을 언급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주도하는 사우디 역시 빈 살만 왕세자가 이날 트럼프 대통령과 세계 에너지시장 및 유가 등과 관련해 논의했다고 확인했다. 사우디가 시장 안정을 위해 OPEC+(OPEC과 러시아 등 10개 산유국 협의체) 긴급회의 소집을 요청했다고 밝힌 점에서 일단 긍정적으로 화답했다는 분석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3월 30일 푸틴 대통령과의 통화에서도 에너지시장 안정 필요성에 공감대를 형성한 바 있다.

당초 국제유가 급락에 대해 “소비자들에게 좋은 일”이라며 관망 태도를 보였던 트럼프 대통령이 러·사우디 간 증산전쟁에 중재자로 뛰어든 것은 양국 간 ‘치킨게임’에 상대적으로 생산단가가 높은 미국 셰일업체들이 최대 피해자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수평채굴, 수압파쇄 등 고도의 시추기술이 필요한 셰일업체들의 경우 평균 생산단가가 배럴당 40∼50달러에 달하는 반면 사우디의 배럴당 생산원가는 10달러에 미치지 않는다. 여기에 코로나19로 석유 수요가 급감하면서 ‘화이팅 페트롤륨’이 파산 신청하는 등 미국 셰일산업 기반이 흔들리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3일 백악관에서 엑손모빌, 셰브런, 옥시덴탈 등 주요 에너지업체 CEO들을 만나 긴급 지원방안을 논의한다.

미국의 중재로 사우디, 러시아 등이 다시 협상테이블에 앉게 됐지만 대규모 감산에 쉽게 합의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감산 규모로 거론한 1000만 배럴은 현재 전 세계 원유소비량의 10%에 달하는 규모다. 사우디와 러시아 간 합의만으로 1000만 배럴을 감산하려면 생산량의 45%가량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다. 당초 러시아가 3월 추가감산에 반대한 배경이 미 셰일산업에 타격을 주려는 의도였다는 해석이 나오는 점도 합의가 순탄치 않으리라고 점쳐지는 배경이다. 사우디 실권자 빈 살만 왕세자 역시 이번 기회에 국제 원유시장에서 축소된 사우디와 OPEC의 영향력을 회복해 왕권 승계에 활용하겠다는 의도를 감추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사우디가 유가안정을 위해 긴급소집한 OPEC+ 회의 참석 범위를 OPEC+에 국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셰일오일 생산으로 세계 최대 산유국으로 부상한 미국을 비롯해 캐나다, 브라질 등에도 감산 합의를 요청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산유국 간 감산합의 기대감에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미국·유럽증시도 반등했다. 이날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다우존스 30 산업평균지수는 전장 대비 2.24% 오른 21413.44에 거래를 마쳤고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와 나스닥지수 역시 각각 2.28%, 1.72% 상승했다. 영국 런던증시 FTSE 100지수는 0.47% 올랐고, 독일 프랑크푸르트증시 DAX지수와 프랑스 파리증시 CAC 40지수 역시 각각 0.27%, 0.33% 소폭 상승했다.

김남석 기자 namdol@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