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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온갖 꼼수가 난무하는 정치권을 유권자는 복잡한 심정으로 지켜봤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이상한 선거제도가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들며 통과되는 모습을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지켜봤다. 선거구가 행정구역이나 생활권역을 가로질러 선거 코앞에서야 획정되는 현실을 어리벙벙한 마음으로 지켜봤다. 비례대표용 ‘위성정당’ ‘자매정당’ 등이 급조되는 사태를 암담한 마음으로 지켜봤다. 비례대표 후보자 명단을 둘러싼 희극적(?) 행태를 참담한 마음으로 지켜봤다. 여야를 막론하고 국정 원칙과 비전보다 의석 획득에 몰두하는 상황을 절망스러운 마음으로 지켜봤다.

이제 지켜볼 시간은 20일 남았다. 오는 4월 15일에는 유권자가 투표로써 심판해야 한다. 사실, 정치권을 지켜본 유권자 상당수는 그냥 포기하고 싶을 것이다. 희망이 없으니 투표해 봐야 소용없다고 느낄지 모른다. 코로나19 시국은 선거에 관심을 끊고 투표장에 오지 않으려는 사람에게 좋은 핑계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투표 기권은 악순환을 심화시킬 뿐이다. 유권자가 정치에서 멀어질수록 정치권에 더 무시되고 피동적 조종 대상으로 전락하게 된다.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유권자를 주인으로 섬기고 눈치 보는 정치인이 많겠는가. 그랬다면 애당초 그처럼 실망감을 자아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키지 않아도 투표권을 행사해야 한다. 유권자는 안중에도 없는 듯이 구태를 반복하는 정치권에 경고를 보내기 위해서라도 투표는 해야 한다. 단지 투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정치권이 유권자를 존중하지 않을 수 없도록 자극을 주는 메시지가 담긴 투표를 해야 한다. 단순한 감정이나 1차적 선호에 따라 투표하는 유권자가 대부분이라면 곤란하다. 정치권은 여야(與野) 모두 지금까지 해온 대로 혈연·지연·학연 등 사적 요인을 강조하고 거대한 이념의 틀 속에서 집단주의적 감성에 호소하는 데 전념할 것이다. 그러면 유권자는 자율적 행위 주체이기보다는 정치권에서 연출되는 분위기에 휩쓸리는 타율적 객체로 전락하게 된다.

정치권이 경각심을 갖고 국민을 주권자로 의식하도록 하려면 투표자의 전략적 사고가 요구된다. 지역구에서 누가 당선돼야만 지역 이익은 물론 국가 이익에 일조할까? 정당투표는 어떠한 결과로 나와 정당별 비례대표 의석이 어떻게 분배돼야 국가 장래에 도움이 될까? 이를 잘 따져보고 전략적 판단을 해야 한다.

국회의원은 입법자이자 대표자로서, 국정 능력, 민주주의관, 미래 비전 등을 갖춰야 하고 동시에 유권자와 소통·공감을 통해 효능감·신뢰감을 심어줄 수 있어야 한다. 정당은 여든 야든 국정의 공동책임자로서 각기 명확하고 통일된 입장을 세우되 상대방과 유연하게 타협해 합의에 이를 수 있어야 한다. 즉, 국회의원은 냉철한 이성과 인간적 감성 사이에서, 정당은 내적 단합과 외적 숙의 사이에서 조화와 균형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표를 던지려면 유권자는 본능, 감정, 1차 선호만 따르지 말고 2차, 3차 선호를 전략적으로 계산해야 한다.

정상 시기라면 유권자에게 전략적 투표자가 되라고 주문하는 게 무리이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러나 지금은 정상 시기가 아니라 비상 시기다. 정치·경제·안보·사회 영역의 중대한 현안이 산적해 있다. 4·15 총선으로 등장할 제21대 국회가 다뤄야 할 이 현안을 볼 때, 또한 정치권만 기대할 수 없는 현실을 볼 때 이제는 유권자가 전략적으로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