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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원 회원 문덕수 시인 타계 …모더니즘 문학에 기여한 거목

장재선 기자 | 2020-03-13 18:29

문덕수 시인 문덕수 시인


- 시인, 평론가, 시잡지 편집인, 문단 조직 수장으로 다방면 활약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인 문덕수 시인이 13일 낮 12시 40분 타계했다. 92세.

문 시인은 시 창작 뿐 만 아니라 문학평론가로 일가를 이뤘다. 또 문학 교수와 시 잡지 편집자, 또 문예 조직의 최고 관리자로 명성을 누렸다. 시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연마하는 모습이 후학들의 모범이었다는 게 문학계 중평이다

1928년 경남 함안에서 출생한 고인은 중등학교 교원자격시험에 합격해 통영고(당시 6년제 중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중에 6·25 전쟁을 만나 입대했다. 마산이 공산 치하로 들어갈 위험에 처하자 ‘불에 뛰어드는 심정’으로 입대했다는 것이 생전에 고인의 회고였다. 1951년 육군종합학교를 마치고 2사단에서 복무하던 중 철의삼각지대 전투에서 중상을 입고 군병원에 후송돼 치료를 받다가 제대했다. 문 시인은 노년에 시집 ‘아라의 목걸이’(2012)에 담긴 시조 ‘이 아픔’ 등을 통해 당시 심정을 표현하고,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그 때 전사한 동료 장병들과 함께 죽지 못하고 살아남은 것에 대한 미안함이 가슴에 무겁게 남아 있습니다.”

전쟁의 참혹함을 겪은 그는 내면 세계로 들어가 시문학에 심취하게 됐으며, 홍익대 법정학부를 졸업하던 무렵인 1955년 청마 유치환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문단에 나왔다. 1963년에 이형기, 함동선, 신동엽, 황금찬 등과 함께 ‘시단(詩壇)’ 동인지를 주재했다. 이 동인지에 한국 문학사에 남는 수작인 문덕수 ‘선에 관한 소묘’(연작시)와 신동엽의 대표작 ‘껍데기는 가라’가 함께 발표되었다.

그는 1966년 두 번째 시집 ‘선·공간’을 펴내면서 문학계의 큰 주목을 받았다. 인간 내면 세계의 흐름을 조형적 이미지로 묘사한 작품들이었다. 영·미 문학의 모더니즘을 수용한 그의 작품은, 당시 주류를 이루던 관념시의 틀을 벗어던진 전위적 작품으로서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1970년대 중반부터 그의 시는 문명 비판적인 요소를 담았다. 그는 이 시기의 시세계에 대해 “역사적 모더니즘쪽으로 기울었다”고 자평했다. 사물 존재의 진실을 추구하면서 역사적 논리나 관념을 도입했다는 것이다. 시집 ‘새벽바다’(1975)가 이 시기에 나왔다.

문 시인은 2006년 시선집을 펴내며 반세기 이상 지속한 시작업 성과를 정리했다. 팔순을 넘긴 2009년에는 470행이나 되는 장시(長詩) ‘우체부’를 발표했다. 그는 “정보통신이 발달한 21세기의 흐름에 천착, 지난 2008년부터 ‘하이퍼 시’ 운동을 하고 있다”며 여전히 뜨거운 문학 열정을 내보여 문단을 놀라게 했다.

그는 시인으로서 뿐 만 아니라 문학평론가로도 활약하며 다수의 역저를 남겼다. ‘현대문학의 모색’(1969), ‘현대한국시론’(1971), ‘한국모더니즘시 연구’(1981), ‘모더니즘을 넘어서’(2003) ,‘니힐리즘을 넘어서’(2003), ‘한국시의 동서남북’(2010) 등이다.

1957년부터 4년간 제주대에서 전임강사ㆍ조교수 등을 지냈고, 1961년부터 1994년까지 홍익대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또한 연세대, 고려대 등 다수의 대학에 출강하며 후학을 양성했다.

그는 한국현대시인협회장(1981~1984)을 지내며 현대시 발전에 기여했고, 1990년 세계시인대회 집행위원장으로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렀다. 그는 생전에 세계시인대회를 이렇게 되돌아봤다. “이어령 문화부장관 시절인데, 세계 각국에서 200여명의 시인이 와서 대대적으로 화려하게 치러졌습니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시인들이 개성적인 시낭송 무대를 펼쳤지요. 그것이 우리나라 시낭송에 퍼포먼스를 도입하는 역사적 계기가 됐지요.”

국제 앤솔러지(시선집) ‘시간 너머의 은유(Metaphor Beyond Time)’를 발행한 것은 세계시인대회의 큰 성과였다.한국문학사상 유럽 작품을 포함한 국제 앤솔러지는 최초였다.

그는 이후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장(1992),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1995) 등을 지내며 우리 문화 발전을 위해 헌신했다.

문 시인이 한국 문학계에 기여한 업적 중에 꼭 기록되어야 할 것은 문예지 ‘시문학’을 50년 가까이 펴낸 것이다. 그는 현대문학사에서 창간했던 ‘시문학’을 1973년에 인수했다. 처음부터 적자였던 잡지를 사들여 문학 잡지를 점점 더 보지 않는 세태 속에서도 꾸준히 책을 냈다. 문 시인은 생전에 ‘시문학’을 계속 낼 수 있었던 것은 부인 김규화 시인 덕분이라고 했다. 실제로 김 시인은 ‘시문학’ 발행인으로서 적자를 메꿔가며 매달 책을 펴내는 고행을 감내했다.

문 시인은 이처럼 문화계에 헌신한 공로로 다수의 상과 훈장을 받았다. 펜문학상, 청마문학상 ,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국민훈장 목련장 , 서울시 문화상, 대한민국 문화훈장(은관) , 대한민국예술원상 등이다.

평소 자기 관리에 엄격한 문 시인은 건강한 편이었으나, 1990년대에 갑상선암이 발병해 수술을 받았다. 종양으로 한 쪽 성대를 제거한 후유증으로 목소리가 거칠어져서 말하는 것을 절제해야 했다. 그는 이후에도 활발히 창작 활동을 펼쳤으나, 말년에는 병원에서 요양하는 시기를 보냈다.

문 시인의 장례는 서울 신촌세브란스 장례식장(13호실)에서 한국문인장으로 치러진다. 장례위원장인 손해일 국제펜한국본부 이사장은 “ 문 선생님은 ”한국 모더니즘 문학 정착에 큰 기여를 하셨고, 생태·하이퍼시를 시도하시며 창작과 이론에서 우리 문학을 이끌었던 거목“이라고 애도했다. 손 이사장은 ”개인적으로는 저의 석·박사 지도 교수님 뿐일 뿐 만 아니라 등단을 시키신 문학 은사이고, 문학단체장 선배님“이라며 ”문 선생님께서 걸으셨던 흔적을 충실히 따르고자 한다“며 존경을 표했다. 그는 ”문학계 거목이 타계하셨기 때문에 장례를 성대하게 치르는 게 마땅하지만, 코로나 19 사태로 전 국민이 힘든 시기이기 때문에 최대한 예를 표하며 간략히 치를 것“이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고인의 유족으로는 ‘시문학’ 발행인이자 한국현대시인협회장인 부인 김규화 시인과 3남 3녀(문수동, 문창동,문준동,문수연, 문동옥, 문중옥 씨) 등이 있다. 발인은 16일 오전 5시, 장지는 국립대전현충원.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6·25전쟁에 참전한 당시의 문덕수 시인 모습과 시 ‘이 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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