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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종 논설위원

한 번도 경험 못 한 ‘말 바꾸기’
조국 이후 公正도 良心도 버려
“그래서 뭐”라며 되레 호통쳐

‘쓰레기’ 욕하다 이젠 정당방위
심지어 정의당에 책임 덮어씌워
국민을 바보로 보는 저질 정치

정치인들의 말 바꾸기는 현실 정치에서 드물지 않다. ‘정치는 생물’이라는 변명이 뒤따른다. 상황과 생각이 바뀌면 말도 변할 수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5·16 군사쿠데타 이후 “군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던 약속을 못 지킨 것이나, 김영삼 전 대통령의 3당 합당,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계 은퇴 후 복귀 등이 대표적이다. 국민도 ‘망각의 동물’인 만큼 언제 말을 바꾸었는지 조금 지나면 다 잊어버리기도 하지만 꼬리표는 붙어 다닌다. 단, 말을 바꾸더라도 국민의 이해를 구하고 사죄하는 염치(廉恥)는 있어야 하는 것이 정치 이전에 인간으로서 기본적 도리다.

그런데 요즘 여당을 보면 문재인 대통령 말을 빌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역대 급 말 바꾸기가 벌어지고 있다. 더 황당한 것은 민망하고 부끄러운 척이라도 해야 할 텐데, 여당의 고위 인사들은 ‘그래서 뭐! 어쩌라고’라며 되레 큰소리친다. 하도 당당해서 비판자들이 주눅 들 지경이다. ‘조국 사태’를 겪으면서 문 정권과 민주당의 주류인 운동권 출신 ‘586 인사’들은 다른 정치세력에 비해 비교우위인 것처럼 포장됐던 ‘공정과 정의’의 가치를 내팽개쳐 버렸다. ‘조국 수호’에 앞장섰던 30대 변호사를 영입 인재라고 포장해 전략 공천 하고, 금태섭 의원은 탈락시키는 것은 그들이 ‘마음의 빚’을 갚는 방식이다. 지난해 조 전 장관이 지명됐을 때 이인영 원내대표는 “조 후보자가 지금 어떤 의미에서는 모멸·능멸을 받으면서도 이 시간을 견디고 있는 것은 오직 검찰 개혁과 사법 개혁 등 그에게 주어진 사명 의식, 소명 의식을 다하기 위한 것”이라고 옹호했었다.

이제 비례 정당 창당을 둘러싼 여당 586 핵심 인사들의 말 바꾸기 행태는 후안무치라는 말도 모자랄 정도다. 그들이 그렇게 구악·구태라고 손가락질했던 구(舊)정치인들의 행태보다 더 혐오스럽다. 그나마 옛 정치인들은 국민에게 미안한 심정이라도 표현했는데, 이들은 불과 몇 달 전 자신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조차 모른 체한다. 민주당은 지난 2월 5일 미래통합당의 위성 비례정당인 미래한국당이 출범하자 “꼼수 정당” “쓰레기 정당”이라며 검찰에 고발했다. 당시 이 원내대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 정신과 취지를 밑바닥에서부터 흔드는 퇴행적 정치 행위”라며 “국민을 얕잡아 보고 눈속임으로 만드는 위성정당의 앞길에 오직 유권자의 거대한 심판만이 있을 뿐이다”라고 했다.

여당 실세들의 ‘마포 5인 회동’에선 “정의당과 민생당이랑 같이 하는 순간 똥물에 뒹구는 것”이라더니, 이젠 이들의 참여를 읍소하며 의병 운운한다. 이 모임에 참석했던 김종민 의원은 “전 세계에서 연동형비례대표제를 하는 나라 중 이렇게 하는 나라는 미래한국당밖에 없다”고 비판하더니, 이젠 “세계 정치학계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범죄행위여서 우리가 연합정당에 참여해야 한다”고 궤변을 반복하고 있다. 송영길 의원은 “오늘의 난국을 초래한 데는 민주당의 책임도 크지만, 정의당 책임이 가장 크다”며 아예 심상정 대표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뻔뻔하려면 이 정도는 돼야 할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길을 놓아 제15대 국회부터 ‘젊은 피’라며 정치권에 진입한 586이 정치에 미친 해악은 이제 용서받기 힘들 지경이 됐다. 여야 대결 차원을 떠나 품성 붕괴 지경까지 이르렀기 때문이다. 죽기 아니면 살기 식의 진영 정치가 고착되고 매사에 편 가르기부터 한다. 코로나19 사태가 대구·경북이 보수 정당을 지지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그들 사이에선 별로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세금 한번 변변하게 내본 적 없는 이들이 국가 재정을 쌈짓돈처럼 마음대로 퍼 주자고 한다. 급기야 전 국민에게 100만 원씩 나눠주자는 발상까지 나왔다.

그런데 이번 민주당 공천에서도 586의 기득권은 확실하게 보장됐다. 보수는 반성하는 시늉이라도 하는데 민주당은 아무 변화도 시도하지 않았다. 이러니 합리적 진보 인사들이 등을 돌리는 ‘진중권 현상’이 벌어진다. 선거는 주권자인 국민이 정치인들을 혼내는 유일한 방법이다. 지난 총선, 대선, 지방선거에서 국민은 문재인 정권에 압승을 몰아줬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 국격과 위상은 어떻게 됐나. 마스크 한 장 구하러 전 국민이 줄을 서야 하고, 123개국에서 ‘대한민국 여권’이 거부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래 놓고도 세계 모범·표준이라는 주장을 반복한다. 국민을 바보로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