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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야구 전설’ 박노준, 명랑골프 즐기며 300야드 펑펑

최명식 기자 | 2020-01-17 10:56

박노준 교수가 지난 14일 전북 전주 우석대 교수 연구실에서 그동안 받았던 골프 트로피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노준 교수 제공 박노준 교수가 지난 14일 전북 전주 우석대 교수 연구실에서 그동안 받았던 골프 트로피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노준 교수 제공

■ 박노준 우석대 경영학과 교수

은퇴후 美서 야구 공부하다 입문
왕년 사우스포처럼 왼손으로 쳐
드라이버 비거리 280m 자랑
종종 파4서 원온…베스트 74타
이글 50여회에 앨버트로스까지

히어로즈 단장 마치고 강단에 서
지난해 국가대표선수협회장 취임


박노준(58) 우석대 경영학과 교수는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 ‘고교야구의 전설’이었다. 그를 지난 3일 서울 용산구 이촌동 미8군 영내 출입 게이트에서 만났다.

대학 강의 때문에 전북 전주에 거주한다는 박 교수는 골프장과 골프연습장이 있던 시절, 이곳을 자주 찾았던 게 인연이 돼 영내 출입증까지 만들었다. 서울로 와 사람 만날 일 있을 때면 이곳이 약속 장소가 된다. 박 교수의 에스코트로 기지 내 드래곤힐호텔 커피숍에 앉아 얘기를 나눴다. 오뚝한 콧날 등 이목구비는 40년 전 선린상고 에이스 시절 그대로였지만, 서리가 내려앉은 듯한 머리카락에서 흘러간 세월을 느낄 수 있었다. 박 교수는 지난해 1월부터 임기 3년의 사단법인 대한민국국가대표선수협회 회장을 맡고 있고, 지인과 함께 운동용품 판매 사업도 병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운동선수 출신. 하지만 박 교수는 이븐파나 언더파를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왼손잡이다. 프로야구에 데뷔했지만 1997년 10월 잦은 부상 탓에 24년의 선수생활을 마감하고 은퇴한 뒤 골프를 시작했다. 현역시절 선물로 받은 골프채는 있었지만, 골프를 치지는 않았다. 골프 스윙은 야구 스윙과 달라 히팅 밸런스가 맞지 않을 것이란 막연한 생각도 있었고, 당시만 해도 선수가 골프를 친다는 건 건방져 보였다.

골프는 은퇴 후 이듬해 1월 야구 공부하러 미국으로 갔을 때 정식으로 배웠다. 메이저리그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 1년, 뉴욕 메츠에서 1년 있다가 다양하게 경험하고 싶어 마이너리그 싱글 A팀에서 유급 코치로 일했다. 때마침 미국에서 스펙이 맞는 왼손잡이용 채가 눈에 띄어 구입했다. 2000년 한국으로 돌아올 무렵 그는 안정적인 80대 타수를 쳤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왼손잡이가 골프연습장 타석 맨 끝에서 벽을 바라보며 공을 치기가 쉽지 않았다. 왼손 골퍼로서 겪은 에피소드는 참 많다. 왼손잡이는 어드레스를 하면 국내 골프장 대부분의 경우 카트 도로가 눈에 들어온다. 왼손잡이에 페이드 구질이다 보니 공이 주로 카트 도로를 향해 날아가는 경우가 많아 카트를 탄 동반자들이 ‘볼~!’ 소리에 놀라는 경우가 많았다. 베스트 스코어는 74타. 3년 전 경기 여주 솔모로골프장 메이플 코스에서 작성했다. 자신보다 한 수 위인 ‘왕 싱글’ 중학교 동창 셋과 라운드할 때였다. 4명 모두 70대 타수였지만, 박 교수가 가장 좋은 스코어를 작성해 모처럼 동창들 콧대를 눌렀다. 이날 팀에서 16개의 버디가 나왔을 만큼 치열했다. 박 교수는 혼자서 버디 4개를 뽑아냈다.

박 교수는 지인들과 즐기는 명랑골프를 해왔다고 강조했지만, 사실 비거리가 너무 많아 타수를 관리하기가 어렵단다. 박 교수의 드라이버 평균 비거리는 270∼280m. 야드로는 300을 훌쩍 넘길 때가 많다. 그 덕에 드라이버를 치면 짧은 내리막 파 4홀에서 종종 ‘원 온’도 시키지만 OB도 자주 나온다. 너무 잘 맞아 옆 홀이나 산으로 올라가는 경우가 많다. 그의 특징 중 하나는 골프장에 따른 스코어 편차가 크다는 것이다. OB 2방이 나오면 70대는 어렵다. 파워히터이다 보니 드라이버가 견디지 못해 1년에 1개는 교체하는데 주로 인터넷 ‘직구’를 통해 미국에서 맞춤 제작을 해서 쓴다.

박 교수가 국내로 돌아오자 프로구단 여러 곳에서 코치직을 제안했다. 하지만 뿌리치고 해설위원으로 활동했다. 공부에 대한 욕심도 있었고 그동안 개인사업을 벌여놨기 때문. 코치가 되면 팀에 전념하게 돼 개인적인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 그리고 훗날 감독직 보장이 없어 1∼2년 코치 계약에 인생을 걸기란 부담스러웠다.

박 교수가 20년 넘게 골프를 치면서 뽑아낸 이글은 50개가 넘는다. 여러 골프모임 행사에 참여해 받은 이글패만 20개가 넘을 정도. 2년 전 꿈의 기록인 ‘앨버트로스’를 작성했던 기억을 잊지 못한다. 2018년 1월에 김제 스파힐스 골프장 힐스 코스 9번홀(파 5홀)에서 5번 아이언으로 친 두 번째 샷이 그대로 들어갔다. 티샷을 280m 날린 뒤 두 번째 샷이 잘 맞았기에 2온을 했겠거니 생각하고 그린에 올라갔지만 공이 없었다. 그린 뒤에서 공을 찾는데 깃대를 잡던 캐디가 “공 여기 있어요”라고 외쳤다. 이 골프장 오너와의 동반 라운드였고, 이 골프장 개장 이래 처음 나온 앨버트로스였다.

박 교수는 프로야구 선수 출신 1호 프로구단 단장을 지냈다. 박사 학위 과정을 공부할 무렵이던 2008년 최초의 네이밍 마케팅을 도입한 히어로즈의 초대 단장을 지냈다. 단장직을 내려놓은 뒤 과학기술대, 호서대 강단에 선 데 이어 2011년부터 우석대에서 정교수로 강의하고 있다.

박 교수는 특히 국가대표선수협회장을 맡으면서 바빠졌다. 대한체육회 산하 60개 가맹단체 국가대표 출신 3만 명이 잠재적 회원이다. 대표로 뽑히지 못한 이들에게 ‘준회원 자격’을 부여해 협회에 합류시킬 계획이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스포츠혁신위원회의 비현실적인 엘리트 체육정책에서 발단이 됐다. 혁신위원회에 참석했던 체육인들이 모두 탈퇴하며 반발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강행한 탓이었다. 박 교수의 뜻대로 진행되면 협회는 100만 명의 회원을 보유하면서 엘리트 스포츠 위상도 강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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