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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의 일본인 聖者

기사입력 | 2019-12-13 11:38

이미숙 논설위원

아프가니스탄은 고난의 땅이다. 아시아와 중동 사이의 내륙국인 탓에 외침이 많았고 내정은 늘 불안정했다. 냉전 시대엔 공산정권 지원을 내세운 소련, 9·11테러 직후엔 알카에다 척결을 내세운 미국이 침공했지만, 어느 나라도 평화를 가져다주지 못했다. 고질적인 정치 부패와 빈곤, 자살폭탄 테러 속에 사는 아프간 사람들은 외국에 대한 경계심과 불신도 크다. 그런 아프간이 요즘 한 일본인 의사의 죽음으로 깊은 슬픔에 젖어들고 있다. 일본의 내과의이자 인도주의 활동가인 나카무라 데쓰(中村哲·73) 박사가 지난 4일 잘랄라바드 부근에서 무장 괴한의 총격으로 숨지면서 페이스북 등 SNS에는 “눈물로 내 마음속의 성인을 떠나 보냅니다” “해시태그 미안해요 일본(#SorryJapan)” 등의 메시지가 잇따르고 있다. 카불과 잘랄라바드에서는 연일 촛불 추모 모임이 열리고 있다고 한다. 추모 열기에 놀란 탈레반은 이례적으로 “우리는 아프간 재건을 지원하는 일본 단체를 공격한 적이 없다”는 성명까지 냈다.

후쿠오카(福岡) 출신인 나카무라 박사는 “아무도 가려 하지 않는 곳에서 의술을 펴겠다”는 결심으로 1984년 파키스탄으로 떠났다. 페샤와르 병원에서 6년간 한센병 환자 치료를 한 뒤 아프간으로 가 무의촌에 진료소를 개설, 의료 활동을 했다. 병원보다 중요한 것이 깨끗한 물이라고 판단해 우물파기 운동을 벌여 1600개의 우물을 만들기도 했다. 가뭄 해결을 위해 나무 심기 운동을 벌이면서 토목공학을 독학해 수로 조성 작업에도 앞장섰다. 아프간 학교 지원 운동가 그레그 모텐슨은 저서 ‘세 잔의 차’에서 “아프간에서 한 잔의 차를 함께 마시면 이방인, 두 잔의 차를 함께 마시면 손님, 세 잔의 차를 함께 마시면 가족”이라고 했다. 나카무라 박사는 늘 차를 마실 수 있도록 식수를 제공함으로써 아프간인과 가족이 된 것이다. 나카무라 박사가 ‘아프간의 성자(聖者)’로 불리는 이유다.

그의 유해는 아프간에서 국장의식 거행 후 일본으로 운구돼 10일 고향에서 장례식이 치러졌다. 그의 활동을 후원해온 후쿠오카의 페샤와르 회는 “나카무라 박사의 유지를 이어받아 계속 아프간 지원 작업을 할 것”이라고 했다. 나카무라 박사와 같은 인도주의자, 페샤와르 회와 같은 비정부기구는 국제사회에서 일본 국격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한국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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