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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한의 Deep Read ]

동북아판 ‘쿠바 미사일 위기’ 직면… 美 ‘선제적 北·中 봉쇄’ 선택할듯

기사입력 | 2019-12-12 10:51


■ 서서히 막 내려가는 美-北 ‘비핵화 여정’

트럼프 ‘영변 핵시설 폐쇄 - 대북 경제제재 해제 맞교환 불가’에 김정은 ‘中 밀착’으로 선회
‘화염과 분노’회귀는 美 스스로 2년의 노력 부정…‘압박·협상’병행은 北이 받아들이기 힘들 것


미·북 관계가 살벌해졌다. 북한의 비핵화가 목전에 닥친 것처럼 미·북 정상회담과 실무회담이 연이어 열리던 지난 1년 반 동안의 ‘비핵화 여정’이 서서히 막을 내리는 양상이다.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시험 발사 움직임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김정은을 겨냥해 “모든 것을 잃을 것”이라고 경고했고,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을 ‘망령 든 늙다리’라 비난하면서 ‘말 폭탄’을 주고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군사력 사용 가능성까지 언급한 상태다. 미·북 관계가 초긴장 상태에 도달했던 2017년으로 되돌아가는 듯한 모습이다. 미·북 간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북은 왜 미국의 심기를 건드렸고, 미국은 어쩌다 강경 태세로 전환했을까.

◇미·북 ‘급악화’와 북·중 밀착

상황이 이렇게 나빠지고 있는 것은 일차적으로 북한이 미국에 연말까지 ‘새로운 셈법’ 혹은 ‘창의적 해법’을 들고 오라며 ‘데드라인’을 설정했기 때문이다. 연말이 다가와도 미국이 꿈쩍하지 않자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새로운 길’, 즉 협상에 대한 미련을 접고 장거리 또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 재개를 위협하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트럼프가 경고하고 북한 당국자들이 ‘말 폭탄’으로 맞서는 상황이 이어졌다.

북한과 미국이 상대의 속마음을 간파한 것은 올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개최된 미·북 정상회담에서였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다른 의제는 젖혀두고 ‘영변 핵시설 폐쇄’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핵심 제재 해제’를 맞바꾸는 데 집중했다. 그러나 북핵 프로그램의 일부에 불과한 영변 폐쇄와 북한 비핵화의 강력한 견인 수단인 대북 제재 해제를 ‘등가(等價) 교환’할 수는 없다고 판단한 미국은 ‘노 딜(no deal)’을 택했다. 미국 야당인 민주당까지도 트럼프 대통령의 이러한 결정을 환영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후 외교·안보 정책에서 초당적 지지를 받은 것은 하노이 노 딜과 대중국 무역전쟁 선언뿐이다.

지난 6월 판문점 미·북 정상 회동 이후 미국은 북한이 가장 절실하게 원하는 것 대신 차선책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선물을 준비해 왔다. 미·북 실무회담과 뉴욕 채널 등을 통해 미·북 연락사무소 개설, 안전 보장, 종전선언, 평화체제 협상 등에 대해 ‘열린 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북한은 “꿩(제재 해제) 대신 닭(정치적 보상)”은 절대로 안 된다는 입장이다. 주민들에게 핵 개발과 경제발전의 동시 병행, 즉 ‘병진정책’을 추진해 온 김정은으로서는 경제를 포기하는 일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은 김정은이 천명한 ‘새로운 길’을 이미 정한 것으로 보인다. 핵심 줄기는 (미국의 대중 무역전쟁 선언 및 홍콩 사태 개입으로 인해) 미국에 대해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한 중국과의 관계를 복원하고 강화하는 것이다. 김정은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수차례 정상회담을 하며 그 전까지 소원했던 북·중 관계를 개선하는 효과를 봤다. 미·중 무역전쟁 개시 이후 중국의 고위급 인사들이 북한을 방문하며 북한을 전략적으로 중국에 묶어두려는 움직임도 활발히 전개됐다. 즉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핵도 갖고 경제 발전도 이루는 전략을 포기하는 대신 중국이 북한의 경제를 책임지도록 전략적 선회를 한 것으로 분석된다.

◇美·中 판 ‘쿠바 미사일 위기’ 재현

2020년은 미·중 전략경쟁 이 격화하는 시기다. 이미 중국 입장에서 미국과의 무역 분쟁은 더 이상 경제 경쟁이 아닌 전략 경쟁이 됐다. 북한은 중국이 미국과 협조해 북한을 비핵화하는 것보다 북핵을 활용해 미국에 대응하는 전략을 취할 것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여의치 않으면 자력갱생으로 가는 것이다. 이렇게 비장한 각오로 2020년을 거칠게 질주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의외의 ‘거래’를 북한에 제안해 올 수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러한 북한의 전략적 셈법을 간파했다. 그는 북한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보고 긴장 수위를 서서히 올리고 있다. 결국 향후 미·북 관계는 트럼프 대통령의 선택이 관건이다.

이렇게 볼 때 내년 초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1962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쿠바 미사일 위기’에 대처했던 것과 같은 상황에 직면할 것으로 예측된다. 케네디 대통령은 소련(지금의 러시아)과의 핵전쟁을 피하면서 소련의 미 본토를 겨냥한 쿠바 중거리 탄도미사일 배치 계획 철회를 끌어내는 방안으로 국제적 압박, 공군을 이용한 공습, 쿠바 연안에 대한 해상봉쇄 등을 검토했다. 그는 해상봉쇄를 선택해 소련에 전면전을 원하지 않는다는 신호를 보내면서도 쿠바로 향하는 소련 함정에 대한 검색을 단행해 미국의 강한 의지를 보여줬다. 동시에 케네디는 비밀리에 소련 대사를 통해 쿠바 내 미사일을 48시간 내 유엔 감시하에 철수하는 조건으로 6개월 후 터키에 있는 미국 미사일을 철수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소련의 흐루쇼프 서기장이 자국 강경파를 달래며 쿠바로부터 미사일 철수를 단행할 명분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트럼프의 선택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의 역사적 경험에서 유추해 볼 때 트럼프 대통령이 택할 수 있는 정책 옵션은 세 가지가 있다. 첫째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로의 회귀, 둘째 저강도 군사적 압박과 협상의 병행(strategic mix), 셋째는 능동적 봉쇄(proactive containment)다.

먼저 ‘화염과 분노’는 2017년처럼 북한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군사적 공격을 위협하면서 북한의 도발 위협에 강하게 맞대응하는 것이다. 이는 긴장 수위를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단호함을 보여줄 수는 있으나 결국 지난 2년 동안 기울인 북한 비핵화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는 메시지를 유권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이어서 상당히 부담스러운 선택이다.

둘째의 저강도 군사적 압박과 협상 병행 방안은 절제된 언어를 통해 군사적 압박의 수위를 높이면서도 물밑으로는 북한에 제재 해제를 약속하며 그에 상응하는 비핵화 조치 또는 도발 억제를 끌어내는 것이다. ICBM 시험 발사 시 미국의 군사적 대응을 불러올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실무협상 재개를 북한이 받아들이도록 하고 2020년 미 대선에서 트럼프가 재선될 경우 제재 해제를 약속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그러나 ‘짐(朕)이 곧 국가’인 김정은이 하노이에서 표명한 입장에 대한 실수를 인정하고 이를 번복하기는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후 제재 해제라는 약속도 믿을 수 없다. 트럼프가 재선되면 아마 그의 머리에서 북핵 문제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결국 트럼프는 셋째 방안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북핵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될 수 없는 사안임을 인정하고 북한과 중국을 선제적으로 봉쇄해가는 ‘능동적 봉쇄’로 나아가는 것이다. 마치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의 ‘해상봉쇄’처럼. 한국과의 방위비 분담금 구조 조정을 전제로 미국의 전략자산을 대대적으로 증강하고, 일본의 역할을 증대하며, 북한의 ICBM 개발에 대응해 한국과 일본에 대한 핵우산을 강화하고, 북·중 연합에 의한 대북 제재 무력화가 생기지 않도록 중국에 대한 2차 제재를 촘촘히 준비하는 것이다. 김정은은 트럼프의 이러한 전략을 미리 간파하고 ‘새로운 길’을 향해 백두산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

고려대 국제대학원장·전 외교부 차관


■ 세줄 요약

미·북 관계 ‘급악화’ 왜 : 트럼프, 영변 폐쇄와 대북 제재 해제를 맞바꾸는 것은 부등가 교환이라는 생각 굳혀. 김정은은 ‘꿩(제재 해제) 대신 닭(정치적 보상)’은 받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다시 중국 밀착으로 전략적 선회를 한 것.

美·中판 ‘쿠바 미사일 위기’재현: 북한은 김정은이 천명한 ‘새로운 길’을 이미 정한 것으로 보임. 그것은 중국과의 관계를 복원하고 강화하는 것. 미·중 전략경쟁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북·중 밀착은 미·중판 ‘쿠바 미사일 위기’를 재현하고 있음.

트럼프의 선택 : ‘화염과 분노’, 군사적 압박과 협상의 병행, 능동적 봉쇄 등의 선택지를 고려할 수 있음. 이 중 북한과 중국을 선제적으로 봉쇄해 비핵화를 성취하는 ‘능동적 봉쇄’로 나아가는 방안을 택할 가능성이 유력함.


■ 용어 해설

미·중 전략경쟁 : ‘미·중 전략경쟁’이란 미국과 중국이 군사, 경제, 공공외교 등 분야에서 글로벌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해 벌이는 경쟁을 말함. 전통적 해양국가인 미국과 대륙국가인 중국의 이해가 부딪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이 중에서도 한반도가 치열한 경쟁의 중심 무대가 되고 있음.

쿠바 미사일 위기 : ‘쿠바 미사일 위기’는 1962년 소련의 핵 탄도미사일 쿠바 배치 시도를 둘러싼 미·소 양국 간 핵전쟁 발발 직전까지 갔던 위기. 미국이 소련의 쿠바 접근을 막기 위한 해상봉쇄를 단행하고 소련이 결국 미사일 배치 계획을 철회함으로써 11일간의 숨 막힌 위기가 막을 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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