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양국이 방위비 분담금 증액 및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을 둘러싸고 갈등을 벌이는 상황에서 미군 최고 수뇌부 인사가 ‘주한미군 철수’ 언급까지 하고 나선 것은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니다.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은 지난 11일 “보통의 미국인들은 한국과 일본에 왜 미군이 필요하고, 부자 나라들은 왜 스스로를 방어하지 못하는지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고 있다”고 했다. 한·일 양측에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강조한 것인데, 일본보다는 현재 협상을 진행 중인 한국을 겨냥한 발언으로 비친다. 미국의 일반 여론을 소개하는 어법이지만, 미군 감축·철수를 입에 올린 것이다.

밀리 의장이 15일 서울에서 열리는 한·미 연례 안보협의회의(SCM)를 앞두고 이같이 언급한 것도 충격적이다. 미 싱크탱크에선 주한미군 감축 가능성이 간간이 제기됐다. 그러나 책임 있는 군 당국자가 이처럼 명확하게 밝힌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을 공론화한 것일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 대선 때 CNN 인터뷰에서 “우리를 제대로 존중하지 않으면 한국이 미치광이 북한에 맞서 스스로 방어해야 할 것”이라며 주한 미군을 방위비 증액용 카드로 쓸 수 있음을 시사한 바 있다.

지소미아 파기 결정이 한·미 동맹 위기로 비화한 상황에서 방위비 갈등은 주한미군 철수 도화선이 될 수 있다. 미국의 이런 기류엔 미 대사관 주변의 지속적인 반미 시위 및 시위대의 대사관저 난입 사건 등에 대한 불만도 깔려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여당 일각에선 방위비 협상 ‘노딜’론이 제기되고 동조 기류도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곧 미군 감축 논의로 이어진다. 12일 간담회에선 방위비 협상 결렬론까지 제기됐다. 자발적 미군 철수 유도가 숨겨진 노림수는 아닌지 의심될 정도다. 진보 진영엔 실제로 그런 주장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