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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화 한국식품영양과학회 회장 단국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지난 9월 17일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국내에 발병했다는 농림축산식품부의 발표가 있었다. 치사율 100%에 이르는 치명적인 돼지 전염병이 국내에도 처음 발생한 것이다. ASF는 사람에게 전염되지 않는 가축 전염병으로, 병에 걸린 돼지는 40도 이상의 고열·호흡 곤란·구토 등의 증상이 발생하며, 끝내는 죽게 된다. 지금으로써는 예방 백신이나 치료약이 없어 발생 농장의 돼지는 모두 즉각 살처분하고 있다. 지난달 12일부터 지난 10일까지 경기 연천지역에서만 돼지 16만여 마리가 전량 수매 또는 도태 처리됐다.

감염경로는 아직 확실하게 밝혀진 바 없다. 경기 파주·연천과 인천 강화 등 북부지역에서만 ASF가 발생한 것으로 미뤄 북한에서 넘어온 야생 멧돼지를 통한 바이러스 유입 또는 태풍으로 인한 바이러스 전파 등이 감염경로로 추정될 뿐이다. 정부는 확산 방지를 위해 중앙사고수습본부를 구성, 범부처 합동으로 대처하고 있다. ASF가 발생한 농장 및 인근 3㎞ 이내 사육 농장의 돼지를 살처분하고, 인근 10㎞ 이내의 사육 농장에 대해서는 수매 또는 살처분 중이다. 농장 입구, 주요 도로에서 철저히 소독하고 있으며, 민·관·군 합동으로 멧돼지 포획에 나서는 등 바이러스가 더는 확산되지 않도록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세계동물보건기구(WOAH)에서는 이미 ASF는 사람에게 감염되지 않으며, 70도 이상에서 30분 가열하면 바이러스가 파괴되므로 식용으로 안전하다고 발표했다. 그런데도 ASF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으로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돼지고기 도·소매 가격은 급락했다. 축산물품질평가원 축산유통정보에 따르면 지난달 23일 기준 돼지고기 1㎏은 3338원(경매가 기준)으로 ASF 의심 신고가 되기 전인 9월 초 4987원(경매가 기준)보다 33% 떨어졌다. 덩달아 소매가도 내리는 중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지난달 23일 돼지고기 100g은 1764원으로 9월 초 2115원보다 17% 내렸다. 양돈 농가(農家)는 ASF로 인해 애지중지 키워 온 돼지를 살처분해야 하는 아픔 외에도, 돼지고기 소비 감소로 경제적 고충도 같이 겪고 있다.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돼지고기의 안전에 대해 막연히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 국내산 돼지고기는 도축장에서 반드시 검사하고, 검사에서 합격한 고기만 시중에 판매되기 때문이다. 또한, ASF 발생국의 돼지고기 및 돼지고기 가공품(멸균제품 제외)에 대해서는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등 검사를 철저히 진행하고 있어 ASF에 감염된 돼지고기가 국내에 유통되는 일은 없다.

영양학적으로 우수한 식품인 돼지고기의 소비가 근거 없는 불안감으로 인해 줄어드는 현 상황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국가표준식품성분표(제9개정판)에 따르면, 돼지고기 등심의 단백질 함량은 100g당 24g으로 쇠고기 등심 16g보다 50% 많아 성장기 어린이 발육에 좋으며, 성인의 경우 근육 증가·유지 등에 도움이 된다. 그리고 돼지고기는 소의 간 등과 더불어 비타민 B1의 훌륭한 공급원이기도 하다. 돼지고기 100g에는 비타민 B1이 0.273㎎ 함유돼 있어, 닭고기나 쇠고기에 비해 월등히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는 조류 인플루엔자(AI) 및 구제역 사태 등을 경험하고 충분히 극복했으며, 그 과정에서 최선진의 방역 및 위생관리 체계를 갖추게 됐다. 막연한 불안감은 양돈 농가를 더 힘들게 만들 뿐이다. 생계를 위협받고 있는 양돈 농가에 모두가 작은 힘이라도 보태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부와 양돈 농가를 믿고, 오늘 저녁에는 영양이 풍부한 돼지고기 요리를 식탁에 올리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