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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명 택한 독재자들… 권력은 잃어도 향락은 계속된다

박준우 기자 | 2019-09-17 10:58


쫓기는 독재자, 사면 원하지만
대부분 다른 국가서 뒷일 도모
후지모리,칠레 방문 중 체포돼

망명때 비자금·보석 등 빼돌려
망명지서도 풍족한 생활 누려
탁신은 딸 초호화 결혼식 과시


로버트 무가베 전 짐바브웨 대통령이 지난 6일 싱가포르에서 노환으로 사망했다. 37년간 아프리카 남부의 짐바브웨에서 철권통치를 휘둘렀던 그는 2017년 쿠데타로 권좌에서 축출된 뒤 신병 치료차 나갔던 ‘객지’에서 생을 마감했다. 고국 짐바브웨에서는 그의 사망 당일을 ‘기분 좋은 금요일’로 부르며 축하했다. 무가베 전 대통령은 그나마 신세가 낫다. 신병 치료 전까지 국내에 있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지도자들은 모국에서 축출되거나 탈출한 뒤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독립, 민주화 투사로 존경받는 국제적 인물도 있지만, 대다수는 독재자로 분류된다.

◇몰락한 독재자들의 ‘선택 2순위’는 망명 = 아벨 에스크리바 포드 스페인 폼페우파브라대 교수와 대니얼 크르마릭 미국 에번스턴대 교수가 지난 2017년 ‘정치학 저널’에 게재한 논문 ‘망명 독재자들’에 따르면, 2차대전 종전 후인 1946년 이래로 100여 명의 정부 수반이 정치적 망명을 떠났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축출된 정치 지도자 전체 중 약 20.1%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여기에 공식 망명을 신청하진 않았지만 2014년 이후 도피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탁신·잉락 친나왓 전 태국 총리 등과 같은 사례를 포함하면 실제 해외를 떠도는 전 정부 수반은 더 많은 것으로 파악된다. 이 중 현재 생존 중인 ‘최장 기간’ 망명 정부 수반은 축출된 지 67년이 된 이집트의 푸아드 2세다. 지난 1952년 아버지 파루크 1세가 축출되면서 함께 망명길에 올랐던 그는 생후 6개월 만에 쿠데타로 집권한 가말 압델 나세르 정권에 의해 궐석 상태에서 형식적으로 왕위에 올랐다가 11개월 만에 퇴위했다. 현재 스위스와 프랑스 지역에서 살고 있다. 1959년 티베트의 중국 병합과 함께 인도로 탈출해 망명한 민주화 투사 달라이 라마가 60년으로 그 뒤를 잇고 있다.

최근 망명을 택한 정치 지도자로는 비리로 검찰 수사 선상에 오르자 지난해 11월 헝가리로 망명한 니콜라 그루에프스키 전 북마케도니아 총리와 지난 2017년 축출돼 적도기니로 망명한 야히아 자메 전 감비아 대통령 등이 있다.

망명 혹은 도피 중인 정치 지도자 대다수는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해외에서 사는 경우가 많은데 예외도 간혹 있다. 무함마드 나시드 전 몰디브 대통령은 지난 2017년 영국으로 망명했다가 이듬해 자신의 지지세력이 총선에서 승리하자 전격 귀국해 영향력을 행사했다. 1989년 망명길에 올랐던 장 클로드 뒤발리에 전 아이티 대통령은 ‘지진 피해를 돕고 싶다’며 돌연 귀국을 선언했지만 자국에서 체포돼 재판을 받던 도중 2014년 사망하기도 했다.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페루 대통령은 일본으로 망명한 뒤 칠레를 방문했다가 붙잡혀 페루로 송환되는 신세가 됐다.

◇과거에는 강대국으로, 최근엔 친분 있는 독재국 선호 = 포드·크르마릭 교수 등에 따르면, 1946년 이후 해외 지도자의 망명을 받아들인 국가는 2012년까지 총 52개국이다. 이후 헝가리와 적도기니를 추가하면 총 54개국이 된다. 그중 총 5명 이상의 망명 지도자를 받아들인 국가는 미국·영국·러시아·프랑스·아르헨티나의 5개국으로 주로 강대국이다. 이 같은 강대국 선호현상은 최근 들어 달라졌다. 연구 결과 과거에는 자신과 유대관계가 있던 미국·러시아나 과거 식민지로 통치했던 국가 등으로 망명이 많았다면 최근엔 그동안 친분이 두터운 정치 지도자가 통치하는 인근 국가로의 망명이 활발해지고 있다. 이에 대해 ‘망명 독재자들’의 저자들은 냉전 종식 이후 사회적 인식 변화가 강대국들이 독재자들의 망명을 받아들이기 어렵게 바뀌었다고 분석했다. 이들은 “과거 적성국으로의 망명을 막기 위함이라는 명분으로 자국 망명을 용인하던 미국 등이 자국에 우호적이던 독재자를 받아줬지만 최근에는 국제형사재판소(ICC) 등을 통해 독재자 및 범죄자들을 단죄하려는 성향이 강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연구진은 특히 “무아마르 카다피 전 리비아 국가원수나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등이 망명을 거부하고 국민과 끝까지 싸우는 것을 선택한 것은 이 때문”이라고 밝혔다.

◇망명 객지에서도 대다수는 호화생활 = 망명 지도자들은 비록 ‘도망자’ 혹은 ‘추방자’ 신세로 해외에 머물고 있지만 유복한 생활을 이어가는 경우가 많다. 대다수가 이미 거액의 자금을 해외로 빼돌린 상태거나 망명국들이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하기 때문이다. 1952년 이집트에서 축출된 파루크 1세는 당시 유일하게 반출이 허가됐던 자신의 와인 상자에 거액의 비자금을 은닉해 해외에서도 풍족한 생활을 누렸다. 뒤발리에 전 대통령도 권좌에서 쫓겨나 프랑스로 망명할 때 각종 보석과 명품 핸드백을 미국이 제공해준 화물기에 가득 채웠다. 지난 3월 탁신 전 총리는 막내딸의 결혼식을 홍콩의 호화 호텔에서 치르면서 여전한 ‘재력’을 과시했다. 필리핀에서 축출됐던 페르난디드 마르코스 전 필리핀 대통령은 미국의 보호 아래 풍족한 생활을 누리다가 사망했다. 미하일 사카슈빌리 전 조지아 대통령은 망명지인 우크라이나에서 오데사 주지사를 지내는 등 우크라이나 국민으로 활발한 정치활동을 하기도 했다.

박준우 기자 jwrepublic@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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