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이미숙 논설위원

한·미, 지소미아 파기 갈등 심화
美의 文정부 ‘안보 文盲’ 경고에
靑 ‘국익은 동맹에 앞선다’반발

美서 한·미 동맹 디커플링 제기
탈동맹하면 중국 위성국 전락
반미 자주로 위기 자초 말아야

대통령 탄핵 논란으로 정국이 혼미하던 2017년 2월 2일,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초대 국방장관인 제임스 매티스가 방한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해외 순방에 나선 첫 각료인 매티스가 한국을 첫 방문국으로 택한 것이다.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 고위 관계자는 “미국이 한반도 상황을 그만큼 엄중하게 보고 있음을 보여준 신호”라고 회고했다. 북핵 위기에다 대통령 탄핵 사태까지 맞은 한국민들에게 “어떤 경우에도 한국과 함께할 것”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북한에 경거망동 말라는 경고를 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는 것이다. 매티스의 방문이 방위비 인상을 위한 행보라는 일각의 해석에 대해서도 “미국은 그렇게 즉자적으로 행동하는 나라가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위기에 빠진 한국을 흔들기보다 안심시키기 위해 서울행을 택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실제 매티스는 방위비 문제를 꺼내지 않았고, 평택기지를 둘러본 뒤 “한·미 동맹의 미래가 될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남겼다.

한국을 ‘동북아의 자유민주주의 요새’로 비유했던 매티스는 한·미 동맹의 가치를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는 인물이다. 그가 트럼프 대통령과 시리아 철군 충돌로 2018년 12월 말 사퇴할 때 워싱턴에서는 “동맹에 무지한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동맹을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걱정이 커졌다. 그런데 요즘 그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위기의 발원지가 워싱턴이 아니라 서울이라는 것이다. 청와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파기 결정 후 한·미 동맹 위기가 표면화하고 있다. 미 국무부는 “문재인 정부가 동북아의 중대한 안보 도전들에 대해 심각한 오해를 하고 있음을 보여준 결정”이라고 논평했다. 국무부 출신 인사들의 비판은 더 셌다. 조지프 윤 전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한·미 동맹의 이완 가속화를 우려했고, 에번스 리비어 전 수석부차관보는 “한국이 자국의 안보적 필요성을 이해하는 역량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문 정부를 ‘안보 문맹(文盲)’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지소미아 파기가 몰고 온 동맹 위기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은 지소미아 파기 결정 이유로 “한·일 양국 신뢰관계 훼손”을 들었다. 미국은 지소미아를 동북아에서의 한·미 동맹 차원의 안보 공조로 보는 데 반해, 문 정부는 대일 압박 카드로 접근했음을 시인한 셈이다. 좋든 싫든 미국의 경고를 청와대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의미도 된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지소미아 파기 결정에 대해 “강력한 우려(strong concern)”와 함께 “실망했다(disappointed)”는 표현을 썼다. 전직 외교부 고위 인사에 따르면 이 표현은 더 이상 협상 상대로 인정하지 않고 상종도 하지 않겠다는 불신을 드러낼 때 쓰인다. 따라서 미국이 문 정부 외교·안보 라인에 고강도의 불신을 공개 표명한 것인데 김 차장은 이것을 “정책적 차이가 있을 때 쓰는 표현”이라고 가볍게 넘겼다. 그러자 미국 측은 더 직접적으로 지소미아 복원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아무리 동맹관계여도 국익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긴급 대미 협의에 나서는 대신 ‘미국이 더 압박하면 중대결심을 할 수 있다’고 반발하며 문 정부판 ‘마이웨이 선언’까지 시사한 셈이다.

문 정부가 일본과 대립각을 키우는 사이 핵을 가진 북한은 한국 전역을 공격할 수 있는 단거리탄도미사일 도발을 9번이나 했고, 중국과 러시아는 한국방공식별구역을 수시로 침범하며 안보 환경을 악화시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 동맹까지 흔들리면 한국은 최악의 안보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다. 매티스는 최근 회고록 ‘콜 사인 카오스(Call Sign Chaos)’에서 “동맹이 있는 나라는 번영하고 동맹이 없는 나라는 쇠락한다”고 역설했다. 매티스는 미국을 염두에 뒀겠지만, 한국에 대한 그의 깊은 애착을 볼 때 문 정부에 대한 충고로도 읽힌다. 유일 슈퍼 파워 미국도 동맹 없이 번창할 수 없는데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한국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탈동맹을 시도하는 순간 한국은 중국의 자기장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이다. 워싱턴에선 한·미 동맹 ‘디커플링’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문 대통령은 반일·반미로 동맹의 원심력을 조장하지 말고 매티스의 충언을 되새기며 동맹 구심력을 키우는 데 주력해야 한다. 동맹이 국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