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한국은행도 우리 경제의 앞날을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일본의 경제 보복이 본격화되지도 않았지만, 올해 성장률 전망을 2.2%로 0.3%포인트나 대폭 낮췄다. 그러면서 금리를 예상보다 빨리 인하했다. 미국보다 금리가 1%포인트 낮아지고 격차가 확대돼 외국 자본의 이탈 위험이 커졌다. 일본의 경제 보복 충격이 금리 인하로 대응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데다, 문재인 정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민주노총이 총파업 시위까지 벌일 정도로 나라 안팎이 어수선하기 때문이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는 2019년 연례보고서에서 한국이 규제와 노동개혁에 소홀하다고 또 경고했다. 성장률 하락과 고용 악화 원인이 정부의 개혁 의지 부족에 있다고 본 것이다. 생산성이라는 단어가 정책 사전에서 사라지고 빈익빈 부익부를 야기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방치한다는 진단은 IMF 등에서도 내린 바 있지만, 정부는 무시했다. 이래서 세계적인 신용평가기관은 한국의 성장률 전망을 1%대로 낮췄고, 투자 전망도 하향 조정했다. 역주행하는 노동정책이 금융시장과 경제의 위험을 키운 것이다.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의 주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소득주도를 외치면 성장이 된다고 믿는지 최저임금 올리는 데 혈안이었다. 근로시간을 단축하면 기업이 채용을 늘리고 고용의 양과 질이 개선돼 경제가 성장한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민간 기업은 고용 참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일자리가 말랐고, 정부는 공공 일자리 늘려 실업률 통계치를 낮추는 데 급급했다. 국민소득은 일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일하는 사람의 생산성이 얼마나 높은지에 의해 결정된다는 경제의 상식을 무시한 결과다.

생산성 제고(提高) 없이도 경제가 성장한다는 소득주도성장은 연목구어(緣木求魚)와 마찬가지다. 생산성은 일정 시간에 얼마나 돈을 버느냐 하는 문제다. 그래서 생산성이 높은 사람은 일할 기회가 많고 임금도 올라간다. 소득주도성장이 성공하려면 최저임금인상과 근로시간 단축만큼 생산성을 높여야 하는데, 정부는 반대로 갔다. 일하는 데 필요한 스킬이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최저임금이 똑같고, 집중적인 업무가 필요한 직장이나 그렇지 않은 직장이나 똑같은 근로시간 제도가 적용되게 만든 것이다.

저임금과 고용 불안 문제의 본질은 저생산성에 있다. 소득 불평등도 마찬가지다. 국가가 할 일은 생산성이 올라가도록 경제 질서를 만드는 것이다. 헌법 제119조 1항은 대한민국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규정한다. 자유와 창의는 생산성을 높이는 원동력이라는 점에서 소득주도성장은 헌법 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개인과 기업이 자유롭게 결정해야 할 임금과 고용을 정부가 더 규제했고 생산성 제고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교육과 훈련에 대한 통제를 더 강화했다.

취약계층의 생산성을 높이는 싹은 죽이면서 재정 지원으로 생색내는 정책이 판치고 있다. 공공 일자리사업에 마구 재정을 투입하고 기업이 채용하라고 보조금 퍼주지만, 취약계층은 더 많아지고 있다. 일은 배우지 못한 채 지원이 끊기면 일자리도 사라지는 정책으로 취약계층 문제를 해결한 나라는 없다. OECD 분석에 따르면 이런 정책은 90%가 재정 낭비로 끝난다. 그런데도 유독 한국은 정부가 일자리를 만들고 소득을 높인다는 망상에 젖어 있다. 일본의 경제 보복도 생산성을 높여야 견뎌낼 수 있다. 문제는 생산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