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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아름·윤정호 커플

“오빠, 미안해… 나 암이래, 유방암.”

“왜 미안해? 나는 암도 이겨낼 멋진 여자랑 사귀는 게 됐는데!”

한아름(여·26·사진 오른쪽), 윤정호(33·왼쪽) 커플의 대화다. 두 사람은 한 식당에서 서빙 아르바이트와 요리사로 만나 사랑을 키웠다. 아름 씨가 미국으로 유학을 가면서 둘은 5년간 장거리 연애를 해야 했다.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둔 지난해 말. 아름 씨는 가슴에 작은 멍울이 만져졌다. 암이었다. 롱디를 마치고 행복한 나날만 기다리던 순간, 홀로 감당하기 벅찬 불행이 찾아왔다고 아름 씨는 생각했다.

둘의 첫 만남은 5년 전이다. 아름 씨는 미국 유학을 확정 지은 상황에서 한 멕시코 음식점 서빙 아르바이트를 했다. 당시 정호 씨는 그곳에서 요리사로 일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정호 씨는 아름 씨를 챙기는 게 남달랐다. 아름 씨 표현을 빌리면 쉽게 또 가장 잘해줄 수 있는 거로 정호 씨가 아름 씨를 ‘꼬셨다’고 한다.

“매일 맛있는 요리를 해줬어요. 제가 서빙을 해야 하는데 오빠(정호)는 저보고 앉아있으라 하고, 스테이크도 만들어주고… 그렇게 저를 꼬셨어요.(웃음) 하지만 이 사람과 연애를 할 거라고 생각 못 했어요. 당시 저는 미국 유학을 앞둔 시점이었고, 또 미국에 가면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어질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아름 씨가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도 둘은 계속 연락을 이어갔다. 바뀐 게 있다면, 오히려 더 애틋해졌다는 점이다. 미국 유학 후 첫 방학, 아름 씨는 한국에서 정호 씨를 만났다. 특별한 고백 없이도 둘은 다시 만난 순간, 이미 연인이 돼 있었다. 두 사람은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장거리 연애를 이어갔다. 보고 싶을 때 볼 수 없다는 외로움보다, 하루하루 앞으로 만날 날이 가까워진다는 설렘이 더 컸다고 한다. 또 아름 씨는 향수병과 새로운 문화에 적응해야 하는 어려움을 정호 씨 덕에 극복할 수 있었다.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둔 지난해 12월. 아름 씨는 정호 씨와 함께 지낼 생각에 들떠 있었다. 둘은 한국에서 함께 지낼 곳도 알아봤다. 졸업 후 같이 어디로 여행을 갈지 머릿속에 지도를 펼치기도 했다. 좋은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손에 닿을 만큼 행복이 가까이 있다고 느꼈다.

그러던 중 아름 씨는 가슴에 작은 멍울이 만져져 병원을 찾았다. 미국 병원에선 유방암 2기초라고 진단을 내렸다. 주변에 암 환자가 없어, 아름 씨는 암이라는 얘기만 듣고 이제 죽는 거라고 생각했다. 유방암 진단 직후 주말인 지난해 크리스마스, 아름 씨는 치료를 위해 한국을 찾았다. 아름 씨는 남자친구 정호 씨에게는 한국에 온다는 것만 알렸다. 구체적으로 자신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 알리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한국에서 한 번 더 진단을 받고, 오빠에게 말하려고 했어요. 유방암이 맞더라고요. 한국에 온 지 일주일 만에 수술 스케줄이 잡혔어요. 그때야 오빠에게 제 상황을 정확히 말했어요. 내가 잘못될 수 있다는 생각보다, 오빠에게 미안한 마음이 더 컸어요.”

불행을 옮기는 것 같아 아름 씨는 정호 씨에게 처음부터 제대로 말을 못 했다고 한다. 장거리 연애가 끝날 때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치료가 시작되는 것도 미안했다. 하지만 정호 씨에게 아름 씨의 암은 불행도 미안할 일도 아니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함께 이겨낼 숙제 중 하나였다. 달라진 게 있다면, 장거리 연애를 시작했을 때처럼 더 애틋해졌다는 것.

암 수술은 잘 끝났다. 또 암이 전이되지 않아, 현재 예방 차원에서 항암치료만 받고 있다. 남들은 암 투병 중 살이 빠진다는 데 오히려 아름 씨는 정호 씨 덕에 체중이 4㎏ 늘었다고 한다.

“가족 없이 홀로 한국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저에게 오빠는 애인이자 친구 그리고 가족이에요. ‘암은 밥심으로 이겨내는 거’라며, 맛있는 걸 챙겨주는 오빠와 함께 ‘벌크업’ 해요. 몸도 맘도 사랑도요. 아!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면, 오빠가 프러포즈한다고….(웃음)”

윤정선 썸랩 에디터 sum-la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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