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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유지할 수 있도록… ‘파산선고’ 용어 삭제 검토

이희권 기자 | 2019-06-13 12:11

법원, 불이익 조항 개정 논의
직종별 규정 손대기는 어려워
일각선 “빚 갚으면 바보될판”


“파산선고를 받은 사람이라도 의사는 할 수 있지만 아이돌보미는 될 수가 없습니다. 이거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앞으로는 파산선고를 받아 결격사유가 발생해도 직업과 자격을 유지할 길이 열린다. 개인이 파산선고를 받으면 현재는 변호사, 회계사, 공무원 등은 물론 아이돌 가수, 아이돌보미 등의 일도 할 수 없다. 대부분의 직역에서 파산선고 그 자체만으로도 결격 사유에 해당돼 즉시 자격이 박탈되거나 퇴출되기 때문이다. 서울회생법원 관계자는 “채무자들에게 재출발의 기회를 주자는 회생제도의 취지를 생각해서라도 파산선고와 동시에 직업에서 당연 퇴직되는 현행 제도는 손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미 의사·간호사 등 일부 직역에서는 취업 불이익 조항을 고쳐 파산선고를 받아도 면허가 취소되지 않는다. 국회의원, 도지사와 같은 선출직 공무원에 대해서도 이 같은 제한이 없다.

채무자에게 ‘실패자’라는 부정적인 낙인을 찍지 말자는 것이다. 이에 회생법원은 지난달부터 법무부와 파산선고 불이익 조항 개정을 위한 업무협의에 들어갔다. 경찰, 교사 등 200여 개 직종의 직종별 규정을 모두 개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 현행 채무자회생법에서 규정된 ‘파산선고’라는 단어 자체를 지우고 이를 ‘파산절차의 개시와 종결’ 등의 표현으로 대체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논의되고 있다. 법 개정이 이뤄진다면 채무자는 대부분 직업에서 파산선고를 받아도 직업을 잃지 않고 계속 일할 수 있게 된다. 한편으로는 법원의 이 같은 움직임을 두고 “빚 갚으면 오히려 바보가 되는 풍토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 또한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개정된 파산제도를 악용해 재산이 있는데도 빚을 갚지 않으려는 사례가 빈발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채권자 이모(59) 씨는 “벌써부터 ‘이도 저도 안 되면 파산신청을 하는 것이 가장 편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며 “직업 등 파산자에 대한 불이익이 사라진다면 ‘배 째라’ 식으로 나오는 사람이 많아질까 우려가 많다”고 말했다.

회생법원은 올해로 도입 20년째가 되는 도산제도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부정적 시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파산선고로 인한 취업 불이익이나 각종 제약 등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으면서 개인 파산 제도 이용 건수가 늘지 않고 있는 점도 회생법원에 위기의식으로 작용했다. 현행 채무자회생법 제32조의 제2항에서는 ‘누구든지 이 법에 따른 파산절차 중에 있다는 이유로 정당한 사유 없이 취업의 제한이나 해고 등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 사이에서는 개인 회생이나 파산 제도 등을 두고 “갚을 능력이 있음에도 제도를 악용해 빌린 돈을 갚지 않고 나 몰라라 하는 것 아니냐”는 좋지 않은 인식이 뿌리 깊다. 회생법원 관계자는 “파산했다고 해서 직업조차 갖지 못하게 한다면 오히려 채무자들이 빚을 갚을 확률만 더 낮아지지 않겠느냐”며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 논란이 나오지 않도록 제도를 면밀히 들여다보고 고쳐나가겠다”고 말했다.

이희권 기자 leeheke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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