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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규 연세대 명예교수 경제학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39.5%로 추산된다. 물론 추경 편성을 위한 국채 발행까지 반영한 추계다. 내년에는 나랏빚이 40%를 넘을 것으로 추정됨에 따라 4년 전 문재인 대통령의 ‘국가채무 비율 마지노선 40%’ 언급이 논란이 되고 있다. 팽창적 재정(財政)정책 때문이다.

우리의 실질GDP 성장률은 2015∼2019년 중 2017년 3.1%까지 오르다가 2018년 2.7%로 떨어졌고, 올해는 2.5%로 다시 하향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 국민경제에 대한 우려는 단지 올해 경제성장률이 떨어질 것이란 정도에 머물지 않는다. 설비투자 증가율이 지난해 12월 이후 연속적으로 마이너스 추세여서 기업의 경기 전망을 잘 보여준다. 또한, 우리 사회의 초관심사인 청년실업률도 4월 11.5%로 지난 1월 8.9%에서 계속 높아지고 있다. 제조업 취업자 수는 1월에 비해 다소 감소 폭이 둔하긴 하지만, 역시 전년 동기 대비 거의 6%에 이르는 감소율을 보인다. 4월에는 경기가 호전될 것이란 기대를 보였던 기재부 역시 이런 경제 흐름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지난 16일 배포된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 결과에서는 경제의 구조적 개혁 없이는 2020년 성장률이 1%대로 떨어질 수 있는 매우 심각한 경제 상황을 지적하고 있다. KDI는 지난 4월에도 고령화의 진행 속도가 빨라 생산성과 고용 구조의 변화 없이는 성장률이 2050년에 이르면 1% 안팎으로 떨어질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지난 4월의 지적이 비교적 장기적인 경제 상황에 대한 우려였다면, 이번 연구 결과는 경제 상황에 대한 인식 전환이 매우 시급함을 말해준다. KDI는 현 경제 상황을 초래하는 원인을 극복하고 2%대의 성장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생산요소의 생산성 향상에 필요한 혁신과 자유로운 경제활동에 필요한 제도적 개선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제언도 했다.

우리는 장기간의 불황을 겪는 과정에서 정책 판단의 오류를 겪은 일본의 경험을 거울삼아야 한다. 도쿄에 있는 아시아개발은행(ADB)의 싱크탱크인 ABDI는 2015년 연구 보고서에서 일본 정책 당국이 1990년대 불황 시기 유동성 함정에 빠져 있다고 잘못 판단해 경기부양을 위해 재정정책을 반복 시행한 결과 오히려 불황 기간을 지속시켰을 뿐만 아니라, 심각한 국가부채의 문제만을 초래했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또, 일본의 재정정책 실패는 단순히 정책적 판단 오류에만 있지 않고 재정정책의 효과성을 높이는 데 필요한 제도적 개혁을 도외시한 데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적 이익에 영합한 비효율적 지역 투자가 정책 실패의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일본 재정학자들의 지적에서도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최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과감한 팽창적 재정정책을 주문한 대통령의 지시는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현 경제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이 얼마나 엄중한지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지금처럼 경제적 상황이 엄중할수록 냉철하고 객관적인 분석이 요구된다. 대통령의 정책적 판단을 돕는 국책연구기관이 내놓은 의견들을 신중히 고려하고 정책에 적극 반영해야 할 때다. 구조적 문제로 경제가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선 재정준칙에 입각한 정책 결정이 필요한 시기이며, 이는 추경과 내년도 예산안 편성에도 엄격히 반영돼야 한다. 향후 진행되는 정치적 일정과 지역의 균형발전이란 정치적 명분으로 경제의 앞날을 결정지을 중차대한 시점에 재정의 원칙을 저버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