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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과 푸틴의 동상이몽

기사입력 | 2019-05-01 12:10


황성준 논설위원

푸틴도 김정은 구하기 힘들어
韓 빠지면 러·북 경협도 헛일
북핵 폐기 없인 극동 개발 한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이후 다시 코너에 몰린 북한 김정은 정권에도 퇴로를 열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붕괴 직전의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정권을 지켜주고, 다 망해가고 있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정권 수명 연장에 구원의 손길을 내밀고 있는 덕분에, ‘독재자 구하기 전문가’로서 악명을 떨치고 있는 푸틴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러시아 극동지방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한 김정은과 정상회담을 했다. 일단 이번 푸틴-김정은 회담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인색하다. 일부 덕담을 제외하면 구체적 합의를 이룬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또, 푸틴 대통령이 이번 회담에서 6자회담 재개 가능성을 언급했지만, 미국 백악관으로부터 나온 답변은 ‘6자회담 식 접근은 과거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지난달 28일 TV에 출연해 “북한은 국경을 맞댄 나라로 러시아가 북한 문제를 다루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미국이 북한을 상대하는 것은 우리 지역에서 활동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문제로 서방 진영과 첨예하게 대립해 경제제재까지 받고 있는 러시아로서는 북한 문제까지 신경 쓸 여유가 그리 많지 않다. 이번 회담이 모스크바가 아닌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이유 중 하나도 러시아가 북한 문제를 러시아의 사활적 이익(vital interest)이 걸린 문제가 아닌 극동지방의 개발 문제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이번 북·러 정상회담에서 러시아 극동개발부 장관과 극동관구 대통령 전권 대표를 배석시킨 사실로도 짐작할 수 있다.

러시아는 극동 개발이 시급하다. 러시아 연방 영토의 40%에 해당하나 인구는 600만 명밖에 되지 않는다. 푸틴 대통령은 동방경제포럼을 만들어 ‘블라디보스토크 공단’ 계획을 수립한 바 있다. 문제는 토지와 에너지는 풍부하나, 자본과 노동력 그리고 시장이 없다는 점이다. 이에 북한 노동력과 한국 자본을 끌어들여 제조한 뒤 미국·일본 등으로 수출하는 방안을 추구하고 있다. 중국인이 러시아 극동지방에서 다수가 되는 결과가 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중국 노동력은 가능한 한 배제하려 한다. 그러나 이 계획은 유엔 대북 제재에 가로막혀 진전되지 않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시베리아 벌목장과 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북한 노동자들을 돌려보내야 한다. 이 문제로 인해 북한 노동자처럼 싸고 튼튼한 노동자를 어디서 구할 수 있냐는 원망이 현지 기업인들로부터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렇다고 당장 유엔 대북제재 허물기에 정면으로 나설 수도 없는 것이 러시아의 현실이다. 북한 노동자의 불법 노동과 북·러 국경지대에서의 원유 밀무역 등을 묵인할 가능성은 작지 않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는 가스·철도 연결은 물론, 블라디보스토크 공단 건설도 현실적이지 않다. 국제사회가 부정하는 한, 자본과 시장을 확보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러시아를 통한 대북 제재 구멍 내기가 성공할 수 있느냐는 한국의 적극적 참여 여부에 달렸다. 러시아 극동 개발 프로젝트 대부분이 한국과의 협력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김정은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번 회담을 통해 러시아로부터 뭔가를 당장 얻어내려 하지 않은 것 같다. ‘지각 대장’ 푸틴을 기다리게 하는 배포를 과시하기도 했다. 북한 언론은 이번 정상회담을 대대적 성공인 양 보도했다. 결국 김정은의 국내 위신 세우기가 주된 목표였던 것이다. 그리고 미국은 물론 중국에 대한 견제구 던지기란 측면도 적지 않다. 김정은은 이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물론 푸틴 대통령과도 만났다. 주변 4강 중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만 남았는데, 아베와의 정상회담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은 이런 과정을 통해 국내외에서의 입지를 굳히고 미국과 장기전을 벌일 태세를 갖추려 하는 것이다.

‘태평양 연안국’ 러시아는 한반도에 발을 담그려는 노력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러·중 관계도 지정학적 관점에서 멀리 볼 필요가 있다. 러시아 극동지방 지상군 배치도를 보면, 사할린과 쿠릴열도를 제외하면 중·러 국경지대에 집중돼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진짜 두려워하는 것은 중국의 군사력이 아니라, 인구와 경제력이다. 러시아와 일본은 올 1월에 이어 6월에도 정상회담을 하려 하고 있다. 하루속히 일·러 평화조약을 체결해 제2차 세계대전 문제를 완결지으려는 것이다. 한국은 러시아 극동 경제 개발의 주요 파트너가 될 수 있다. 단, 완전한 북핵 폐기가 이뤄져야만 제대로 된 한·러 합작 극동 개발이 진행될 수 있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 섣부른 ‘러시아판 개성공단 만들기’에 나선다면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돼 사업 자체도 실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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