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서울은 미술관 프로젝트’로 조성된 녹사평역 지하예술정원.

2년마다 발표하는 ‘문화향수실태조사’의 2018년 발간보고서에 따르면 국민 1인당 문화예술행사 관람 횟수는 연평균 5.6회로 2016년의 5.3회에 비해 0.3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 증가율은 2016년 3.7회에서 2018년 4.0회로 증가한 영화 관람의 영향으로 영화를 제외한 문화예술행사는 2년 전과 변함이 없었다. 문화예술행사의 보완요소로 수준 높은 작품과 낮은 가격, 가까운 장소를 우선적으로 꼽고 있다. 이러한 조사 결과는 생활 사회간접자본(SOC)의 중요성이 더 강조되는 부분이다.

가까운 곳에서 낮은 비용과 수준 높은 문화예술 활동은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려는 도시재생사업과 이어져 있다. 도시재생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마을마다 예술창작소나 작은 도서관 등 시민문화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공간들은 시민들의 접근성이 중요한데 접근성이 좋은 곳은 가격이 비싸 확보가 쉽지 않다. 또한 거리 등의 물리적 접근성 외에도 그 공간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심리적 접근성까지 가지고 있어야 한다.

물리적·심리적 접근성을 동시에 가지고 가까운 거리에서 무료로 수준 높은 예술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이다. 여느 지하철역과 다름없이 출퇴근하는 사람들로 붐비는 이곳이 미술관으로 그 모습을 바꾸게 된 것은 올 3월의 일이다. 둥근 천창으로 들어온 햇빛이 35m 아래의 지하 4층 대합실까지 스며드는 원형 홀에는 빛을 매개로 하는 작품들이 골고루 자리 잡고 있다. 유리와 흰색의 익스팬디드 메탈에 부서지는 햇살이 원형 홀을 가로지르는 에스컬레이터의 움직임을 경쾌하게 만들고 있다. 움직임 끝에는 예술가들과 시민정원사들이 조성한 녹색의 정원이 바쁜 시민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빛에서 시작된 예술정원은 남산 숲을 형상화한 나뭇조각과 한 땀 한 땀 손으로 짠 그물이 만들어내는 예상치 못한 경관을 지나 지하 깊숙이 이어진다. 승강장을 가득 채운 오묘한 색의 편린들은 가보지 못한 땅속 세상을 상상하기에 충분하다. 무엇보다도 매일 이곳을 지나는 1만5000명의 시민이 만들어낸 생명력이 그림의 전체를 완성하고 있다.

지하철역은 새로울 것 없는 교통시설의 일부이지만, 생각해보면 매일 아침저녁으로 이용하는 지하철역만큼이나 우리 가까이에 있는 공간도 없을 것이다. 녹사평역으로 인해 무심한 일상생활의 한 부분이 문화예술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에스컬레이터 손잡이 위로 반짝이는 햇빛을 보며 새삼 느끼게 된다.

건축가·디자인연구소 이선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