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영화 ‘미성년’으로 감독 데뷔한 배우 김윤석은 “배우로만 출연할 때는 흥행에 예민했는데 감독이 되니 거기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다”며 “‘관객이 어떻게 볼까’가 가장 중요하다. 작품의 완성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작은 사진은 김 감독의 촬영 현장 모습. 쇼박스 제공

■ 영화 ‘미성년’으로 첫 메가폰

세트없이 대사 주고받던 연극
직접 각본쓰고 장면까지 구성
혹독한 작업 끝 5년만에 공개

모니터까지 보려니 쉽지 않아
정작 내 연기는 제대로 못챙겨
“이스트우드처럼 못하겠더라”

“제가 확실하게 잘할 수 있는 소재를 선택해서 정면승부 했어요.”

배우 김윤석은 자신의 감독 데뷔작에 담을 이야기를 고른 기준과 풀어낸 방식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연극 연출자로 시작한 그는 전국대학생연극제 대상을 수상했고, 무대에서 연기력을 키웠다. 첫 영화 연출작 소재도 젊은 연극인들의 창작 희곡 시연회장에서 건졌다. 또 캐릭터의 맛을 자연스럽게 표현해내는 그는 주 무기를 앞세워 새로운 시각으로 군더더기 없는 드라마를 펼쳐냈다. 흔한 불륜 이야기를 독특하게 펼쳐낸 영화 제목은 ‘미성년’(사진)이다. 11일 개봉하는 이 영화는 각자의 아빠, 엄마가 불륜을 저질러 아기까지 생긴 사실을 알게 된 두 여고생을 중심으로 혼란에 빠진 두 가정의 이야기를 그렸다. 어른 같은 미성년들과 어른스럽지 않은 어른들을 맞붙여 ‘어른다움’에 대한 생각을 이끌어 낸다.

‘황해’ ‘남한산성’ ‘1987’ 등 주로 선 굵은 영화에 출연해온 그의 연출작은 왠지 묵직한 작품일 것 같았지만 예상이 빗나갔다. ‘미성년’은 여성 감독이 연출한 듯 장면 구성과 흐름이 섬세하다. 그는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순간을 보여주려 했다”고 연출 의도를 소개했다.

“제가 카메라 워킹이나 장르적 테크닉을 얼마나 구사할 수 있겠어요. 캐릭터와 드라마로 밀어붙였죠. 할 만한 이야기를 찾다가 2014년에 무대 세트도 없이 두 명의 고등학생이 대사만 주고받는 연극 시연을 보며 ‘이거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너희 아빠랑 만나는 우리 엄마가 임신했어.’ ‘몇 개월인데.’ 이런 대사를 어른이 하면 어둡고 암울할 텐데 시각을 바꾸니 심각하지 않고 에너지가 넘치는 느낌을 받았어요. 사건 중심이 아니라 그 사건에 놓인 사람을 압축해서 보여주려 했어요. 효과적 정보 전달을 위해 장면 낭비를 안 하려고 공을 많이 들였어요.”

이미지 크게보기 영화 ‘미성년’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 공개하는 데 5년이 걸렸다. 4년 전 그와 인터뷰하며 감독 데뷔에 대한 질문을 던지자 “제가 다시 연출자로 나선다면 엄청나게 혹독한 준비를 할 것”이라고 답한 기억이 떠올랐다.

“연극을 영화로 옮기기 힘들었어요. 희곡작가와 함께 각본을 쓰며 장면 구성은 제가 담당했어요. 연극적인 문어체 대사를 영화에 맞는 구어체로 바꾸는 작업도 제가 했고요. 그러면서 ‘괜히 시작했나’ ‘포기할까’ ‘이게 상업영화로서 메리트가 있나’ 별생각이 다 들었어요. 투자받기 쉽지 않았는데 유정훈 메리크리스마스 대표가 쇼박스에 계실 때 ‘예산은 많지 않다’며 투자 결정을 해주셨죠. 제 은인이에요.”

그는 이번 작품에 배우로도 출연했다. 그가 불륜을 저지르는 대원을 연기했으며 염정아가 대원의 부인 영주 역을, 김소진이 대원의 불륜 상대 미희 역을 맡았다. 또 김혜준(대원 딸 주리 역)과 박세진(미희 딸 윤아 역) 등 신인 배우들이 이야기를 이끈다.

“감독에서 배우로 모드를 바꾸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엄청 스트레스받았어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90에도 두 역할을 잘해내는데 저는 못하겠더라고요(웃음). 찍고 달려가 모니터 보느라 제 연기 챙길 겨를이 없었어요. 대원은 이야기의 균형을 잡으며 관객을 쉬어가게 하는 기능적 역할인데 너무 웃기더라고요. 속으로 고민하며 웃기는 장면을 모두 단순화시켰어요. 염정아 씨는 남편의 외도로 자존감이 무너지는 캐릭터를 잘 소화해줬어요. 염정아 씨나 김소진 씨 모두 베테랑이라 특별히 디렉션을 줄 일이 없었어요. 조용히 다가가서 ‘이런 느낌으로 한 번 더 가면 어떨까요’라고 속삭이듯 말했죠(웃음). 혜준과 세진은 저와 촬영 두 달 전부터 연습했고요. 대사보다 걷는 게 어려운 시기니까요.”

그에게 “배우로 영화에 임할 때와 감독으로 현장에 섰을 때 어떤 점이 달랐냐”고 물었다.

“신인감독답게 많이 준비했지만 뭔가 자꾸 불안해서 의자에 앉지를 못하겠더라고요. ‘컷’을 외쳐야 하는데 ‘액션’이라고 하고는 어색해서 헛기침을 했어요(웃음). 또 배우로 참여할 때는 흥행에 예민하게 반응했는데 감독이 되니 흥행에 신경 쓸 여유가 없어요. 그냥 관객들이 어떻게 볼지 궁금하고 긴장돼요.”

“이스트우드 감독처럼 오랫동안 연출과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말을 건네자 그는 “그때까지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미성년’이 감독 데뷔작이자 은퇴작이 될 수 있어요(웃음). 김칫국부터 마시면 안 되죠. 조바심 내지 않으면서 연기를 하며 놓치고 싶지 않은 소중한 이야기를 찾아다니려고 해요. 연기와 연출 모두 매력적인 일이니까요.”

김구철 기자 kc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