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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前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댄 코츠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이 최근 한국을 방문했다. 국가정보원장, 국방부 장관 등 대북 정보담당 책임자들과의 면담 내용은 극비 사항이라 외부로 알려지지 않으나,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 이후 미국 최고 정보 수장의 방한이 던지는 메시지는 불문가지다. 한국이 대북 제재의 궤도를 이탈해선 안 된다는 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복심이다.

미국은 하노이 회담 이후 한국의 친북(親北) 행보에 대해 우려스러운 눈길을 보내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전면에 나서서 물샐 틈 없는 대북 제재 이행을 강조하고 있다. 빅딜에 의한 전면적 비핵화 정책만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일본과 달리 사전 정보 부족으로 하노이 회담이 종전선언과 영변 핵시설 폐기가 교환되는 스몰딜을 확신했던 문 정부는 패닉 상태다. 중재자를 자처하던 청와대 입장에서 진퇴양난의 처지가 되자 ‘굿 이너프 딜(good enough deal)’이라는 공감대가 없는 용어로 미국의 입장 전환을 시도하자 사달이 나기 시작했다. 정부의 공허한 대북 스탠스는 세 가지 점에서 시의성이 결여됐다.

우선, 하노이 회담의 결렬 내막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는 증거다. 1차 싱가포르 회담은 트럼프 대통령의 오판(誤判)이 변수였다면 2차 회담은 김정은 위원장의 오산(誤算)이 변수였다. 미국 국내정치의 약점을 파고들 경우 트럼프 대통령을 배드딜(bad deal)로 유인할 수 있을 것이라는 평양 대미 협상팀들의 판단은 착오였다. 회담 결렬 이후 양측 협상의 기승전결부터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업무 순서다. 정부는 양측의 간극이 어느 정도이고 향후 접점을 찾을 수 있을지 관련 정보를 파악하는 데 무력하다.

둘째, 회담 결렬 후에도 정부가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미국과 협의하겠다고 밝힘에 따라 워싱턴의 실망감과 회의감은 깊어지고 있다. 뜬금없는 남·북·미 정상회담 제안은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미·북의 협상이 노딜로 마무리됐는데도 비핵화를 전제로 한 정책을 교조적으로 고수하는 문 정부의 대북정책에 워싱턴의 한숨이 커지고 있다.

셋째, 북한을 바라보는 한·미 간의 시각이 각도는 다르더라도 최소한 방향만은 같아야 한다. 정부의 북한에 대한 묻지 마 지지와 편향은 한·미 동맹의 근본적인 가치를 훼손할 수밖에 없다. 최근 미국 본토의 해안을 지키는 해안경비대 소속 함정이 한반도 근해에 배치된 것은 북한의 해상 불법 환적을 감시하기 위해서다. 한국의 감시에 대한 불신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가 해안경비대 함정까지 보낸 의미를 정부는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동맹이 항상 한목소리를 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작금의 한·미 동맹 균열은 경보단계를 넘어 위기단계다. 심지어 미국은 한국이 미·북 관계에서 빠지면 좋겠다고 하는 분위기다. 미국 고위관리들은 한국에 과거 중재자 역할을 맡아 달라고 요청한 적이 없다고 공공연하게 말한다. 한반도 운전자·중재자·촉진자 등 정부의 다양한 역할이 거론됐지만, 북한의 비핵화가 2차례의 정상회담에서도 가닥을 잡지 못한 만큼 대북 정책의 노선 변경이 필요한 시점이다. 동북아 국제정치의 격랑 속에서 ‘핵보유국’ 평양만을 구애하는 정책은 지난 2년간의 실험으로 충분하다. 비핵화 의사가 부족한 평양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면 한·미 동맹의 악화와 경제적 국익 손실로 연계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