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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해로운 또 다른 이유 (끝)

미스샷땐 자존심 큰 상처
현실 직시 못하고 흔들려
인정 안할땐 더 큰 화 불러

‘필드의 풍운아’ 美 댈리
경기중 화 못다스려 추락

실수땐 심호흡 크게한 뒤
자신만의 ‘프리 샷 루틴’
긴장된 마음 가다듬어야

골프를 하다 보면 화가 나기 일쑤다. ‘허 참. 왜 이러지? 이런 적이 없는데…’ ‘바보같이 내가 이런 실수를…’ 속에서는 화가 부글부글 끓지만, 표출할 수는 없다. 화가 난 상태에서는 효과적으로 플레이할 수 없다. 그래서 구력이 있는 선배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은 화를 잘 참아야 한다며 화를 참는 방법에 대해 조언한다. 화를 참아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흥분된 상태라 샷에 집중할 수가 없다. 또 흥분한 감정은 근육을 경직시켜 샷을 망가뜨린다. 웬만한 구력이 있는 골퍼라면 이런 경험을 수도 없이 해 봤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

화를 잘 참고 잘 다스려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이것이 더 중요하다. 화를 낸다는 것은 심리학적으로 ‘자신의 실수를 받아들일 수 없어’라는 의미가 있다. 자신이 한 미스 샷이나 실수를 인정할 수 없고 인정하고 싶지도 않다는 의미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말한 ‘부인’이라는 자아 방어기제를 사용하는 셈이다. 자신이 한 행동이나 어떤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에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다. 인지치료의 대가인 미국의 심리학자 앨버트 엘리스의 주장도 이와 유사하다. 화가 나는 저변에 ‘이까짓 것이 뭔데…’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이처럼 화가 나는 현상은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 즉 화가 난다는 것은 자신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고, 자신의 현 상황을 직시하고 싶지 않은 셈이다. 이것은 자신의 문제점을 알 수 없게 하며 이를 바로잡을 길을 없앤다.

‘필드의 풍운아’ 존 댈리(미국·사진)는 필드에서 화가 나면 고집을 부려 홀에서 상상을 넘는 ‘하이스코어’를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2005년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베이힐인비테이셔널 4라운드 18번 홀(파4)에서 댈리는 11타를 쳤다. 두 번째 샷이 그린을 넘자 세 번째 샷을 높이 띄웠다. 홀에 붙여 파를 노리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그 샷은 길었고, 공은 바위틈에 멈췄다. 플레이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댈리는 화가 나 평소의 고집을 부렸다. 공을 그냥 치는 것을 택했다. 무려 네 차례나 클럽을 휘둘렀지만, 공은 3인치(약 8㎝) 전진하는 데 그쳤다. 그제야 댈리는 언플레이어블(1벌타)을 선언하고 드롭한 뒤 9타 만에 공을 그린에 올렸다. 약 4.5m 거리에서 2퍼트로 홀 아웃해 11타를 기록했다. 댈리는 앞서 1998년엔 같은 대회 최종 라운드 6번 홀에서 18타를 쳤다. 골프 실력은 누구나 인정하는 댈리였지만, 이런 무모함 탓에 실력에 비해 우승할 기회가 적었고 롱런을 할 수 없는 이유가 됐다.

골프 코스에서 화를 한 번도 내지 않은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화가 문제가 되는 것은 단순히 그 게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화를 내는 것은 자신을 직시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에 앞으로의 수많은 게임도 망칠 가능성이 크다. 이것은 결국 자신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화란 어떤 일에 기뻐하고 슬퍼하며 무서워하듯, 어떤 억울한 상황에서나 원하는 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 자연스레 일어나는 감정이다. 자연스레 일어나는 감정이기 때문에 화를 내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화 그 자체가 누구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기에 나쁜 것도 아니고 당연히 내지 말아야 할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화를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다. 화라는 감정에 매몰, 통제하지 못한 채 화를 내게 되면 대부분 타인에 대한 신체 또는 언어적 폭력을 동반하게 되고 심지어는 자신을 다치게 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통제하에서 화를 내야 한다.

우선 화가 나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자신에게 화가 올라오고 있음을 순간 알아차리게 되면 머리끝까지 화가 치미는 상황을 방지할 수 있다. 그런 후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뿜는다거나 주변을 둘러보면서 마음을 전환한다거나 혹은 자신만의 프리 샷 루틴을 통해 마음을 가다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평소에는 사회적 기술을 학습하듯이 마음 챙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자신의 내면과 대화하는 일, 침묵과 명상을 통해 화를 다스리는 법을 익힐 수 있다.

심리학 박사·연우심리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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