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지휘부의 얼빠진 행태가 도(度)를 넘고 있다. 경찰청이 추석을 앞두고 경찰관들에게 ‘백남기 우리밀 선물 세트’를 사라고 하고 있다고 한다. 이달 초에 내부 메신저를 통해 ‘공동 구매’ 메시지를 보낸 형식이긴 하지만, 현직 경위가 “한 간부는 직원들에게 1개씩 사라고 강요하기도 했다”고 증언한 사실에 비춰 ‘원하는 사람만 구매하라는 것’이라는 경찰청 변명은 구차하게 들린다.

2만9000원짜리 선물 세트는 백 씨가 설립에 참여했던 우리밀살리기운동 관련 회사가 판매하고, 수익금 일부를 백남기기념사업회 기금으로 지원한다고 한다. 백 씨 사망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런 선물 세트를 사라는 것은 경찰에 대한 모욕이기도 하다. 그는 2015년 서울 도심을 무법천지로 만든 민중총궐기대회의 폭력 시위에서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이듬해에 병원에서 숨졌다. 당시 경찰 100여 명이 부상했고, 경찰 버스 50여 대가 파손됐다. 살수차 작동 절차를 지키지 않은 혐의로 1심 유죄 판결을 받은 경찰관 2명의 벌금 등을 돕기 위해 동료 경찰들은 모금운동까지 벌였다.

그런데도 경찰 지휘부는 사과를 거듭했다. 그러고도 모자란다는 식이다. 공권력을 무력화(無力化)해선 안 된다. 오죽하면 어느 경찰관은 “불행한 사고지만, 폭력 시위 진압 경찰들이 거액을 배상하고 직업을 잃을 위기에 놓인 상황에서 백 씨를 추모하고 기리는 ‘선물 세트’를 사라니 경찰이 된 것에 자괴감이 든다”고 개탄했겠는가. 공동 구매를 중지하고, 민갑룡 청장을 비롯한 경찰 지휘부는 정신 차려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