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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우 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 교수 무대미술가

옛 프랑스‘무대 위 객석’奇習
어느 귀족이 비용 부담해 폐지

운행 정보 안내 장황하고 불편
광고와 이벤트는 佛 舊習 수준

요금에 세금까지 내는 ‘뚜벅이’
편리하고 쾌적한 교통 원한다

381년 전 프랑스 극장가에 기이한 관습이 생겨났다. 어느 연극에 수용 한도를 넘어서는 관객이 몰리자 무대 위에 의자들을 가져다 놓고 관객을 앉히는 욕심을 부렸다. 그 후 다른 공연에서도 무대 위에 관객을 수용하면서 점차 정식 객석처럼 여겨지게 됐다. 배우들은, 무대 위 양쪽 3분의 1씩 차지한 채 서로 마주 보게 놓인 임시 객석 사이의 좁은 통로만을 연기공간으로 사용하게 됐다. 공연의 품질이 현저하게 떨어졌지만, 수입이 늘어난 극장주와 흥행업자들은 ‘쁘띠 마르퀴스’를 없애려 하지 않았고, 극장과 경쟁할 대중매체가 없던 그 시절의 일반 관객들은 참고 볼 수밖에 없었다.

정치인 성향의 관객들은 일부러 무대 위 좌석을 예약하고 공연 중 자신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의도적으로 늦게 입장해 배우들 사이로 걸어 나와 좌석을 찾아가기도 했다. 그들은 이미 관객이 아니라 무대 위의 배우들이었다.

2018년 서울의 지하철 전동차 내부 천장에는 (3호선을 예로 들자면) 모니터가 설치되어 있다. 한 칸에 16개씩, 어느 자리에서나 2개씩은 볼 수 있는 이 모니터들은, 승객들에게 운행정보를 실시간으로 알려줄 수 있는 훌륭한 시설인 듯하다. 그러나 현실은 프랑스 극장의 ‘쁘띠 마르퀴스’ 같은 존재다. 각 모니터 화면에서는 끊임없이 광고가 흘러나오고 화면 아래 딱 한 줄에만 운행 정보가 자막으로 나온다. 순서대로 영문 부호 및 띄어쓰기까지 그대로 적어 본다.

‘오금행 / 이번역은 교대[敎大][340] / 법원 검찰청역 / [法院 檢察廳驛][340]입니다. / 내리실 문은 / 왼쪽입니다. / 잠실이나 사당, 신도림 방면으로 / 가실 고객께서는 / 이번 역에서 2호선으로 / 갈아타시기 바랍니다. / This stop is / Seoul Nat’l University / of Education[340] / [Court and Proscecutors / Office][340] / The doors are / on your left. / You can transfer to / the Green line. / 이번역 : 교대(340) / 首이敎育大(法院·檢察 / 廳驛)(340) / キョデ(340) / Seoul Nat’l University of Education / (340) / Court and Proscecutors’ Office (340) / 내리실 문 : 왼쪽 / Door : LEFT’

모두 합쳐 28행이다. ‘오금행’이라는 안내가 계속 떠 있다가 정차역에 가까워지면 그때부터 이 글자들이 한 줄씩 천천히 올라간다. 문득 정신 차려 ‘여기가 어디지’ 하며 모니터를 쳐다보는 승객들에게는 어이없는 일이다. 게다가 음성 안내는 더 기가 막힌다. 한마디 정보를 얻기 위해 귀를 쫑긋 세운 승객들에게 들려오는 소리는 “새로워진 ○○○○성형외과로 가실 분은 △△역 2번 출구로 나가시기 바랍니다” 하는 광고 방송들이다.

위의 한글 12행을 줄여보면 ‘◁교대 (2호선 환승)’, 이렇게 단 1행으로 끝난다. 한 줄의 자막에 정차역과 환승 정보, 내릴 방향까지 표시할 수 있다. 필요한 그 한 줄의 정보를 얻기 위해 왜 승객들은 하염없이 자막을 쳐다보고 있어야 하는가? 그 이유를 곧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모니터는, 화면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상업광고를 보게 하기 위해 달려 있는 것이며, 광고를 보게 할 미끼로 운행 정보를 가급적 천천히 흘려보내 주는 것이다. 요금에 세금까지 내는 시민들을, 광고 게재료 몇 푼 때문에 불편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도 경쟁재가 없기 때문에 승객들은 불편함을 참고 있다. 이쯤 되면 주객이 전도된 프랑스 극장의 무대 위 객석과 다를 게 무엇인가?

프랑스의 그 기습(奇襲)은 122년간 계속되다가 1759년에 없어졌다. 불편하기 때문에? 아니다. 그 언어도단의 행태를 더는 참고 보지 못하던 한 부유한 백작이 “저 돈, 내가 낼 테니 무대 위 좌석들을 없애 주시오”라고 해서 프랑스 국립극장의 무대 위에는 이후로는 좌석을 놓지 않게 되었다. 그럼 우리도, 그 광고료 우리가 낼 테니 모니터에 운행 정보를 합리적으로 표시해 달라고 해야 하나? 사설 철도도 아닌데?

매일 지하철을 이용하는 1000만 시민의 눈으로 보면 개선해야 할 점이 수도 없이 있다. 시민들은 ‘이벤트’가 아니라 ‘교통’을 원한다. 지하철 음악회나 전시회들이 ‘안전하고 편리한 교통’이라는 본질보다 앞설 수는 없다. 국제도시 서울의 지하철은 생전 처음 와 보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기준에 맞춰져야 한다. 그러면 자연히 서울 시민들과 내국인들도 편리해진다. 몇 가지만 지적해 보겠다.

직관적인 안내 시스템이 필요하다. 대화 방향-오금 방향이 아니라 북서 방향(northwest bound)-남동 방향(southeast bound)으로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면 노선도에서 색상과 방향만을 보고도 원하는 선로를 선택할 수 있다. ‘소요산 방향-신창 방향’은 지하철 1호선 만큼이나 서울에서 오래 산 필자도 당황스럽다. 모든 노선의 종점들을 어찌 다 외우겠는가? 개찰구는 캐리어를 끌고 통과할 수 있어야 하며, 어린이도 잔액 화면을 볼 수 있도록 높이를 낮추어야 한다. 전동차 안에서 문득 ‘여기가 어디지’ 할 때 몇 초 이내에 파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전동차에서 내렸을 때 가까운 곳에 지도가 있어야 한다. 어느 출구로 나가야 할지 그 시점에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지도의 위쪽은 북쪽이어야 한다. 환승 안내든 출구 안내든 방향유도 표시는 명확하고 지속적이어야 한다.

‘Back to the Basics, Continuous Improvement’. 서울 지하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의 홈페이지에 실려 있는 ‘CEO 경영 원칙’이다. 기본으로 돌아가서 끊임없이 개선해 줄 것을 서울 뚜벅이의 1인으로서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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