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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에 배울수록 더 즐겁다

기사입력 | 2018-07-06 14:34

김병일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 前 기획예산처 장관

가정 형편 어려워 초등학교만 마친
60대 베이비붐 세대에 특별한 강연

의자 앞으로 당기고 필기하며 경청
배우고자 하는 진지한 자세에 감동

퇴계 선생은 ‘도산12곡’에 담았다
배움에 젖어들면 늙는 줄 모른다고


필자가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에 몸담은 최근 10년 동안 50만 명 이상의 사람이 선비수련을 이수하였다. 민간에서 이런 성과를 내자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서 크고 작은 도움을 받았겠는가? 퇴계 선생의 선비정신이 이 시대 사람들의 인성 함양에 던지는 반향에 대해서는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지만 많은 사람의 자발적인 호응과 지원이 없다면 그것을 현실화하는 일은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다.

타지 사람인 필자에게 퇴계 문중을 비롯한 이 지역 분들이 보내주는 성원은 더욱 남다르다. 요즘 와서는 외지 출향 인사 중에 각별한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그 가운데 부산에서 중학교 교장 선생님으로 있는 퇴계 후손 한 분이 계시는데, 얼마 전 연락이 왔다. 부산 시내 다른 중학교 교장으로 전근을 갔다면서 필자에게 학생들을 대상으로 재능 기부 강연을 부탁하는 내용이었다.

부족하지만 그간의 고마움을 다소나마 갚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대상을 물었더니, 60대 방송통신 중학생이란다. 베이비붐 세대로 태어나 가정형편 때문에 초등학교만 마치고 중단했던 학업을 뒤늦게나마 하려는 이들인데,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듯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3배나 된다고 하였다. 뭉클한 마음에 기꺼이 수락하고 강연 날짜를 그들이 수업받는 일요일로 정하였다. 그런데 얼마 지나서 다시 전화가 왔다. 기왕 하는 김에 다음 날인 월요일에도 10대 정규 중학생과 40대 학부모에게 강연을 해줄 수 없겠느냐는 말씀이었다. 이틀에 걸쳐, 그것도 대상을 달리하는 강연이라서 쉽지는 않았지만, 그간의 고마움을 생각해서 추가 제안도 수락하였다.

강연을 듣는 이들의 세대 차이가 확연한 만큼 입장과 관심 또한 현격히 다를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그래서 강연 주제를 차별화하여 진행하였다. 60대 어르신 중학생에게는 ‘노년의 지혜, 퇴계의 선비정신에서 배운다’로 정하고, 늦은 나이에도 배우는 삶을 크게 격려하였다. 노년에도 배우고 또 배운 것을 앞으로 자신의 삶에서 반드시 실천한다면 주위의 많은 사람에게서 점차 어르신 대접을 받게 된다. 그러면 지금보다 더욱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퇴계를 비롯한 참선비들이, 앎과 삶이 함께 나아가는 지행병진(知行幷進)을 매우 중시하였음을 곁들여 소개하면서….

이어 10대 중학생에게는 ‘성공하기 위해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주제로 하였다. 100세 장수시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슬기롭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창의성을 기르고 인공지능(AI)과 로봇이 결코 따라올 수 없는 ‘따뜻한 가슴’ ‘훌륭한 인품’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이와 함께 옛 선비들의 5단계 공부 방법인 널리 배우고(박학·博學) 질문하고(심문·審問) 신중히 생각하고(신사·愼思) 명확히 분별하고(명변·明辯) 독실하게 실행하는(독행·篤行) 순서를 소개하며 특히 질문과 토론을 활발하게 할 것을 일깨웠다.

40대 부모에게는 ‘어떤 부모가 자녀를 훌륭하게 기르는가?’를 주제로 정하였다. 미래의 성공을 중시하는 부모와 당장 하고 싶은 것에 더 애착을 가지는 자녀 사이에는 관심의 갭이 매우 크다. 이것을 잘 인식하고 부모가 먼저 틈을 좁히는 노력을 해야 한다. 공부만 잘하는 아이보다 남을 배려하는 인성을 갖춘 아이가 사회에서 더 롱런할 뿐만 아니라, 부모에게도 효도한다. 자녀가 그렇게 자라도록 하는 길은 하나밖에 없다. 부모의 모든 것을 따라 배우는 것이 자녀이므로 부모 스스로 바른 삶을 실천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등의 내용이었다.

이틀에 걸친 강연에 가장 적극적으로 호응한 이들은 60대 어르신 학생이었다. 그분들은 처음부터 의자를 앞으로 당기고 자세를 바로 취하며 노트에 필기도 하였다. 필자도 이런 반응에 점차 이끌려 평소보다 용어 하나 억양 하나까지 신경 쓰며 이해하기 쉽도록 강연하였고, 도중에 과분하게 여러 차례 박수도 받았다. 선비정신과 같은 딱딱한 주제를 가지고 박수를 받는 일은 드물기에 필자로서도 오래 기억에 남을 만큼 보람 있는 시간이었다.

그들은 왜 남들보다 더 진지하고 뜨거운 반응을 보였을까?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다른 사람과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었다. 그런 그들에게 배움의 기회가 왔으니 얼마나 듣고 쓰고 알고 싶었을까? 공부는 학창시절에만 하는 것이 아니다. 나이 들어서도 꾸준히 배우고 제대로 실천할 때 하루하루 더 훌륭하고 존경받는 삶을 살 수 있다.

필자가 도산의 산책길에서 수시로 마주하는 ‘도산12곡’ 시비가 말해준다. 퇴계 선생은 맨 마지막 12번째 시에서 배움의 즐거움을 이렇게 노래하였다.



우부(愚夫)도 알며 하니 그 아니 쉬운가

성인(聖人)도 못다 하시니 그 아니 어려운가

쉽거나 어렵거나 중에 늙는 줄을 몰라라



어리석은 우부든, 훌륭한 성인이든 배울 수 있다. 누구나 배움에 젖어들면 세월 가는 줄 모른다. 왜 그럴까? 배운 것을 실천하니 모두가 존경을 해주리라. 모두가 진정으로 바라는 삶이 아닌가? 그러니 평생토록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

퇴계의 가르침이 부산의 노소 중학생들을 넘어 더 많은 어르신과 젊은이들에게 퍼져 나갔으면 한다. 우리 모두가 배우고 실천하여 서로 존경을 주고받는 사람들이 넘치는, 사람 냄새 나는 사회가 앞당겨지기를 염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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