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권 조정, 진실 묻힐 우려”
3000명 달하는 정보경찰이
마구잡이 수사땐 인권침해도

정부가 지난 21일 경찰에 수사종결권을 부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문’을 발표한 가운데 경찰의 잘못된 법 적용으로 묻힐 뻔했던 아동 강간 사건을 검찰이 재수사해 기소한 사실이 확인됐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검은 경찰이 ‘강간죄’로 의율해 공소시효 소멸을 이유로 ‘공소권 없음’ 의견으로 송치한 여아 강간상해 사건의 죄명을 ‘강간상해죄’로 변경해 지난달 기소했다. 피의자 A 씨는 2001년 12월 인천 계양구에서 하교하던 11세 여아를 아파트 지하실로 데려가 성폭행했다. 올해 2월 동종범행으로 수감 중 검거됐으나 경찰은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할 수 없다고 봤다. 하지만 검사는 의사가 발급한 전치 4주의 상해진단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의사를 수소문해 피해자의 상해 정도 등을 조사한 뒤 피의자의 죄명을 강간상해죄로 변경, 공소시효를 살려냈다.

검사는 2010년 4월 15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제정되면서 ‘성폭력범죄로 피해를 당한 미성년자가 성년에 달한 날’이 공소시효 기산점이 된다는 점에 착안했다. 1990년 12월생인 피해자가 성인이 되는 해는 2010년 12월이다. 강간죄를 적용하면 2008년 12월에 공소시효가 완성돼 특례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공소시효가 10년인 강간상해죄를 적용하면 특례법을 적용할 수 있어, 공소시효 완성일은 2020년 12월이 된다. 앞서 2016년 대구지검은 경찰이 피해액을 12억 원으로 한정한 다단계 사기 사건을 재수사해 노인, 주부 등 3823명으로부터 126억 원을 편취한 사실을 밝혀냈다.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문의 핵심은 경찰이 범죄를 수사한 뒤 혐의가 있으면 검찰에 넘기고 그렇지 않은 사건은 자체 판단에 따라 무혐의로 끝낼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동안 경찰은 수사한 사건의 기록을 모두 검찰에 보내 기소·불기소 여부는 물론 주요 피의자 조사에 대해서도 지휘를 받아야 했다. 그 과정에서 경찰 의견이 검찰에서 뒤집히는 경우가 연간 4만6000건인 것으로 검찰은 집계하고 있다. 수사권 조정으로 3000명에 달하는 정보경찰이 각 공공기관, 대기업, 시민단체에서 생산한 정보보고를 바탕으로 마구잡이식 수사를 하면 인권침해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정유진 기자 yooji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