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삼의당 김씨의 문집인 ‘삼의당고(三宜堂稿)’. 시 99편과 19편의 산문이 수록된 2권이 1933년에 간행됐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소장

1769년 출생 ‘三宜堂 김씨’
한날 한시 태어난 남편과 결혼
칠언절구시로 천생 인연 표현

1769년 전라도 남원 서봉방(樓鳳坊)에서 동네 경사가 일어났다. 한날, 한시에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의 울음소리가 동시에 울려 퍼졌다. 남자아이는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하연(1376∼1453)의 후손 담락당(湛樂堂) 하립(1769∼1830)이고, 여자아이는 성종 때 사관을 지낸 탁영(濯纓) 김일손(1464∼1498)의 후손 삼의당(三宜堂) 김씨(1769∼1823)다.

삼의당 김씨는 자신의 책 서문(序文)에 밝혀 놓은 것처럼 어리석은 호남의 부인네였다. 그러나 일찍이 언문으로 소학을 읽고 깨우쳤으며, 서당과 향교의 담 너머로 한문을 깨우쳐 여러 학자의 글을 읽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일찍부터 학문적 소양을 갖추고 있었다는 깨알 자랑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핏속에는 정통 영남 사림학파의 학맥이 흐르고 있었으니 그 자부심의 발로였으리라.

유전자의 영향일까? 문학 소년을 만난 덕일까? 삼의당이 첫날밤 남편과 주고받은 시가 예사롭지 않다. 조선시대 혼사는 매파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두 사람이 소꿉친구로 부부의 연을 맺고 서로의 정이 싹트게 된 것은 이미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므로 매파는 그저 왔다 갔다 하는 것일 뿐이라고 하자 삼의당 역시 둘의 혼인은 천생배필이라며 맞장구를 친다.

十八仙郞十八仙(십팔선랑십팔선)／洞房華燭好因緣(동방화촉호인연)／生同年月居同한(생동년월거동한)／此夜相逢豈偶然(차야상봉기우연)

열여덟 선랑과 열여덟 선녀가／동방화촉 좋은 인연 맺었네／같은 해 같은 달에 나서 한마을에 살았으니／오늘 밤 만남이 어찌 우연이리요?

지금도 가장 젊은 꽃다운 나이를 이야기하자면 18세이다. 하립과 삼의당의 나이도 18세. 더욱이 콩깍지가 씌었으니 신부는 얼마나 아름다울 것이며, 신랑 또한 무엇과도 비견할 수 없었다. 여기에 달빛까지 더해졌으니 첫날 밤 사랑하기 딱 좋은 날이었으리라.

滿天明月滿園花(만월명월만원화)／花影相添月影加(화영상첨월영가)／如月如花人對坐(여월여화인대좌)／世間榮辱屬誰家(세간영욕속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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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엔 밝은 달이 가득하고 뜰엔 꽃이 가득한데／꽃 그림자에 달그림자가 더하여졌네／달빛인 양 꽃인 양 낭군님과 마주 보고 앉았노라니／세상의 영욕 따위야 어느 집에 있는 이야기인가.

그러나 사랑은 늘 현실 속에서 시험의 대상이 된다. 남편은 아직 젊고 집안을 일으켜야 하는 사명을 갖고 있다. 아내는 오로지 어버이를 영화롭게 할 뜻으로 남편의 등과를 재촉했다. 그렇게 보내놓은 남편은 산속에 들어가 공부를 하고, 과거를 보기 위해 서울로 올라갔지만 고향에 남아 자식을 기르고, 시부모를 돌보며 가정을 건사해야 하는 것은 오롯이 삼의당의 몫이었다.

가을 달밤과 함께 남편의 빈자리는 더욱 크고 애틋함은 점점 깊어만 갔다. 그러나 오매불망 기다렸던 낭군의 금의환향 소식은 들리지 않고 남편 뒷바라지에 살림마저 기울어 마침내 머리카락을 잘라 가정을 돌보았다. 10년을 그렇게 보냈건만 결국 고향으로 돌아온 남편은 농사지으며 같이 살자고 한다.

다행히 하립은 여자의 마음을 위로할 줄 아는 남자였다. 하립은 삼의당의 거처에 글씨와 그림을 가득히 걸어두고 뜰에는 꽃들을 가득 심어 ‘삼의당’이라는 당호를 지어줬다. 첫째, 아내로서 남편을 잘 보살폈고, 둘째, 시부모를 잘 섬기고 봉양했으며 셋째, 형제간에 우애하는 데 앞장섰음을 칭송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힘든 세월을 보냈을지라도 남편의 따뜻한 말 한마디는 가장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또한 남편이 지어 준 당호 아래에서 남편과 주고받는 시는 힐링 그 자체였다. <끝>

이민주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