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2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이후 1주일 만에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외교적 승리’가 분명해지고 있다. 북핵의 실질적 폐기는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는데, 한·미 안보동맹은 약화하고 북한에 대한 ‘최대 압박’은 허물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 중단이다. 한·미 양국은 8월로 예정됐던 UFG 연습 중단을 결정했다고 19일 발표했다. 한·미 연합훈련은, 북핵 문제와는 차원이 다른 한·미 동맹의 핵심 장치이다. 이 때문에 UFG 연습은 1990년 이후 지난해까지 남북관계가 좋고 나쁨을 떠나 실시됐다. 따라서 안보동맹의 견고함을 허물 수 있는 중단 결정 자체도 문제이지만, 그 근거가 된 ‘김정은의 핵 폐기 의지’에 대한 안이한 인식은 더욱 심각한 일이다.

백악관이 연합훈련 중단에 대해 “북한이 선의를 갖고 행동하는 한”이라고 한 사실에 비춰보면, 키리졸브(KR) 및 독수리(FE) 연습도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전략자산 전개에 따른 ‘돈’문제까지 언급했기에 더욱 그렇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은 자진해서 중단 결정을 내렸다고 자랑하기까지 했다. 북한은 협상의 판을 깨지는 않으면서 교묘하게 완전한 핵폐기(CVID)를 회피하고, 협상도 최대한 지연시키려 할 것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전망대로 해도 최소한 ‘2년 반’은 걸린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의 진정성’을 확인했다면서 이런 조치들을 앞세우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남북 간의 1992년 한반도 비핵화 선언, 미·북 간의 1994년 제네바 합의, 2005년 6자 회담 공동성명을 통해 같은 행태를 반복해 왔다. 싱가포르 회담에서는 CVID 로드맵에 대한 이면 합의라도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세부 협상을 다시 해야 한다고 한다. 수십 년 반복된 북한 전략에 또 속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과 러시아는 유엔 제재 완화까지 요구하면서 대북 제재의 뒷문을 다시 활짝 열어주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미국 의회는 물론 행정부에서 싱가포르 회담에 대한 자성론이 일고 있다는 사실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17일자 사설에서 “군사적 훈련을 취소하는 것은 군사적 과오”라며 비판했다. 북한 같은 체제와의 협상에서는 ‘믿어라, 그러나 검증하라’라는 원칙 및 ‘행동 대 행동’이라는 균형을 유지하지 않으면 언제든 낭패에 직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