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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어묵 혁명’ 重刑

기사입력 | 2018-06-14 12:06

황성준 논설위원

2016년 2월 8일 홍콩의 몽콕 야시장에서 일어난 ‘어묵 혁명’ 주도자들이 중형(重刑)을 선고받았다. 지난 11일 홍콩고등법원이 로킨만(盧建民), 에드워드 렁(梁天琦), 윙카쿠이(黃家駒)에게 각각 징역 7년, 6년, 3년 6개월을 선고했다. 징역 7년과 6년은 홍콩 사법부 사상 폭동죄를 적용해 내린 판결 중 가장 무거운 형량이다. 홍콩 민주파는 ‘민주 탄압’이라 반발하고 있으나, 친중 여당인 친설립파(親設立派)는 ‘폭력 시위에 대한 단죄’란 입장이다.

어묵 혁명은 중화권 최대 명절인 춘제(음력설)에 노점상 단속을 시도하자, 이에 반발하는 노점 상인들에 당시 야시장을 즐기던 홍콩 시민들이 합세하면서 시작됐다. 시위대가 무장 경찰을 향해 벽돌을 던지고 쓰레기에 불을 지르자, 경찰은 후추 스프레이를 뿌리고 경찰봉을 휘둘렀다. 이 과정에서 경찰이 실탄 경고사격을 하고, 100여 명이 부상했다. 어묵 혁명이란 명칭은 몽콕 지구의 노점상 대부분이 어묵 상점이었고, 어묵이 홍콩 서민을 상징하는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어묵 노점상 탄압은 홍콩을 위한 것이 아니라 중국 자본을 위한 것이라며, ‘우리는 홍콩인이다’란 구호가 나왔다.

중국은 어묵 혁명이 제2의 ‘우산 혁명’으로 번지는 것을 우려했다. 우산 혁명은 2014년 9월 중국의 기만적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안에 반발하며 일어난 홍콩 민주화운동이다. 직선제라고 하나, 입후보 자격을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가 구성하는 후보 추천위원회의 과반 지지를 얻는 인사 2∼3명으로 제한했기 때문이다. 명칭은 경찰의 살수차 물줄기를 우산으로 막은 걸 계기로 붙여졌다. 한때 10만 명 이상이 참여해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으나, 실질적 결과를 얻지 못했다. 2017년 3월 홍콩 행정장관 선거는 직선제 아닌 ‘체육관 선거’였다.

어묵도, 우산도 모두 ‘미완의 혁명’으로 끝났다. 그러나 일국양제(一國兩制)의 모순이 심상찮음을 보여줬다. 또 다른 역설은 홍콩의 거대 금융자본은 친중파인 반면, 노동자 등 서민층이 반중 민주파란 점이다. 대자본은 중국 대륙의 거대 시장을 원하는데, 서민층은 대륙에서 몰려오는 저임금근로자들로부터 위협받기 때문이다. ‘국민당 치하에서는 자유의 많고 적음이 문제지만 공산당 치하에서는 자유의 있고 없음이 문제’란 중국의 비극적 무당파 지식인 추안핑(儲安平)의 말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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