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북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24일 전격 취소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여지를 열어 놓았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회담 기대’를 강하게 밝힘으로써 회담 재추진 협상이 곧 열릴 것으로 보인다. ‘협상의 달인’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카드는 돌발적으로 비치지만, 그간의 상황을 종합한 합리적 결론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다음 달 12일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될 경우의 후폭풍은 심각할 것이다. 그럴 위험이 있다면 당연히 지금 제기해 제거하는 것이 낫다.

외형상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망나니 행태’를 문제 삼았다. 김정은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에서 회담 철회의 이유로 “당신들의 최근 발언에 나타난 엄청난 분노와 공개적 적대감”을 제시했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아둔한 얼뜨기” 등으로 원색 비난한 것 등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또한, 북한은 싱가포르 회담을 위한 실무접촉에 응하지 않거나 연락 채널도 가동하지 않는 등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한다. 과거 미국 행정부엔 이런 행태가 통했을지라도 더 이상 용납 않겠다는 것이다.

이런 외양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의구심이다. 북한 당국자들의 ‘험구’는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미·북 회담은 ‘완전한 비핵화’ 진정성에 근거해 추진됐는데, 최근 움직임을 보면 ‘거짓 비핵화’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문재인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김정은과 시진핑 중국 주석의 2차 회동 뒤 심각한 변화가 감지됐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실제로 미국은 비핵화 방법 및 검증 등을 놓고 ‘디테일 협상’을 벌여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북한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폐기(CVID)를 무력화할 수 있는 이른바 ‘단계적·동시적 조치’를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중국은 물론 한국의 문 정부까지 북한 편을 들면서 자칫 비핵화 협상이 ‘대북 제재’의 뒷문을 열어젖히는 결과만 초래할 위험성이 매우 커졌다. 이런 상황에선 회담을 하지 않거나 연기하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문 정부는 냉철히 대응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모든 채널을 동원해 미·북과 각각 소통하며 상황을 되돌려놓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회담에 대한 북한 의지를 의심할 필요가 없다”고도 했다. 문 정부는 북한의 비핵화가 전략적 결정이라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그러나 미·북 막후 협상을 통해 이런 기대는 아직 환상임이 드러나고 있다. 지금 북한의 꼼수가 간파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적당히 북한과 합의하려 들면 한·미 동맹의 심각한 훼손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문 정부는 미국 및 국제사회와 공조를 더 공고히 하면서 CVID가 실행될 때까지 최대 압박에 앞장서야 한다. 그것이 미·북 협상을 성공으로 이끄는 데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