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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부잣집은 1년에 소고기 500㎏씩 먹었다

엄주엽 기자 | 2018-04-13 11:22

야외에서 소고기를 숯불에 구워 먹는 난로회(煖爐會)라는 풍속이 18세기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 유행했다. 19세기 화가 성협(成夾)의 풍속화집 중 ‘고기굽기’로 알려진 그림은 난로회의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에서 소고기를 숯불에 구워 먹는 난로회(煖爐會)라는 풍속이 18세기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 유행했다. 19세기 화가 성협(成夾)의 풍속화집 중 ‘고기굽기’로 알려진 그림은 난로회의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국립중앙박물관


- 조선, 소고기 맛에 빠지다 / 김동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소고기 귀했을것 통념과 달리
17세기 후반부터 19세기까지
전국서 하루 1000마리 소비

부자뿐만 아니라 백성도 즐겨
1마리 가격 쌀 한두가마 정도
연간 40만 마리 가까이 잡아


요즘도 서민들이 사 먹기에는 금전적으로 부담이 되는 소고기. ‘니밥에 고기국’은 지난 20세기까지도 한국인의 집단적 집착이었다. 여기서 ‘고기국’은 물론 소고기국이다. 그런데 조선시대에 오히려 20세기보다 소고기가 더 풍성하게 탐닉됐다면?

지난해 ‘조선시대의 생태환경사’로 한국출판문화상 등 여러 상을 수상했던 역사학자인 저자는 이 책에서 다양한 자료를 통해 소와 소고기로 본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본다. 농사가 근본이었던 조선시대에 소를 잡아먹지 못하게 한 우금령(牛禁令)이 시행된 것을 국사교과서에서 배운 우리는 당시 사람들이 소고기를 구경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한다. 기껏 그 시대 백성들은 나라에서 선농단(先農壇) 제사를 지낸 뒤 남은 소뼈를 우린 국물인 ‘설렁탕’이나 맛보았을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16세기 중반부터 소고기 식용이 널리 성행하기 시작해 17세기 후반부터 19세기까지는 전국에서 하루 1000여 마리의 소를 잡았다.

한마디로 조선인들은 소고기에 ‘환장’해 있었다. 나라에서 여러 차례 우금령을 내리고, 소 잡는 이들을 처벌했지만 소고기를 먹는 일은 그쳐지지 않았다. 숙종 2년(1676) 1월의 승정원일기에는 “도성의 시전에서 각 고을의 시장, 거리의 가게까지 모두 합해 하루에 죽이는 것이 1000마리로 내려가지 않는다. 이에 소값은 날로 뛰어오르고 만들어내는 것은 날로 줄어든다”는 기록이 있다. 숙종 38년(1712) 김창업이 쓴 ‘새해 첫머리에 소를 잡다’(歲時屠牛)라는 시에 보면 “새해 초 얼마나 많은 소를 도살했던지 피와 고기가 거리에 널브러져 있었다”고 표현하고 있다. ‘동국세시기’에는 18세기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 청나라 북경에서 유래한 난로회(煖爐會)라는 풍속이 유행했다고 나온다. 기름·간장·계란, 파·마늘·후춧가루로 양념한 소고기를 난로에 둘러앉아 석쇠 위에 구워 먹는 것이다. 요즘은 주로 삼겹살을 구워 먹지만 조선시대에는 소고기였다.

18세기 후반 이덕무의 ‘세시잡영(歲時雜詠)’에는 “상등 부자 잡는 소는 두셋, 중등 부자 잡는 소는 하나”라는 대목이 있다. 소 한 마리를 잡아 160∼170㎏의 고기를 얻을 수 있다면, 상등 부자는 320∼510㎏, 중등 부자는 160∼170㎏의 고기를 연중 소비했다는 계산이다. 부자뿐만 아니라 백성도 소고기를 즐겨 먹었다. 세종 7년 기록에 가난한 지역인 함경도에서 제사를 지내고 손님을 대접하는 데 연간 수천 마리의 소를 잡는다고 했다. 숙종 2년에 군사들을 위로하는 잔치인 호궤(호饋)에 현재 도량으로 환산해 일인당 810g의 소고기가 제공됐다. 요즘 고기 1인분이 150∼200g인 점과 비교해 보면 된다.

소고기가 귀하지 않았던 것이다. 기록을 추산해 연간 도살되는 소가 40만 마리에 가까웠을 것으로 본다면, 당시 사육소 수는 100만 마리는 족히 넘었을 것으로 보인다. 세종 이후 농사를 위해 소 기르기를 크게 장려한 효과였다. 18세기 무렵 우역(牛疫·소의 전염병)이 없어, 헐값일 때 소 한 마리에 10냥이었다. 당시 쌀 한 섬에 5∼8냥이었던 걸 고려하면 쌀 한두 가마에 소 한 마리를 살 수 있었다. 당시 소고기는 저렴했던 것이다.

소고기는 맛도 좋았지만, 사대부에게는 장수 음식, 백성에게는 구황 식품으로 인식됐다. “소고기를 즐기는 자는 오래 살았고, 소고기를 멀리하는 자는 단명했다”는 게 상식처럼 통했다. 나라에서는 엘리트 집단인 성균관 유생들에게 일상적으로 소고기를 먹였다. 서울 도성 내에 유일하게 소 도축을 허가한 장소가 성균관이었고, 남은 소고기는 시장을 통해 일반에게 판매해 성균관을 운영하는 비용으로 사용했다. 백성들은 기근이 찾아오면 농사짓는 데 사용한 소를 잡아먹었고, 소고기는 화폐처럼 거래되기도 했다. 책은 소고기의 생태환경사뿐만 아니라 당대 유행하던 다양한 조리법도 소개한다. 264쪽, 1만5000원.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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