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찾아가는 한글배달교실’의 노인 수강생들이 경북 안동시 풍산읍 경로당에서 글씨 쓰기 연습을 하고 있다. 안동시 제공

안동시 ‘한글 배달 교실’ 어르신 140명 시화집 화제

크라우드 펀딩 모금해 책 펴내
수강생 중 1명 외 전부 여학생
옛 시집살이 애환·아픔 등 글로

“편모 슬하에 자라서 이십세에 시집왔다／ 시조모님은 내가 머리 빗으면 인물 없는 것이／ 거울 본다고 뒤에서 주먹 쥐고 때리는 시늉을 하니／ 말도 못하고 거울 보고 울었다…(중략) 한글교실 댕겨서 글자 배우고 내 평생 처음 이 글 써보니 그 때 응어리가 풀린다／ 글이 어이 이리도 소중한고.”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들의 늦깎이 한글 공부가 시집으로 빛을 발했다. 경북 안동시청이 주관하는 ‘찾아가는 한글 배달 교실’ 수강생 140명이 ‘어머니의 시간’이라는 시화집을 냈다. 이 시집을 발간하기 위한 모금활동은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인 ‘텀블벅’을 통해 지난 2월 목표 금액인 100만 원을 3배 이상 넘긴 349만1000원을 모으고 성황리에 종료됐다.

시화집에는 여자로 태어나 평생 까막눈으로 살던 설움도, 늦게나마 글을 깨친 즐거움도 삐뚤빼뚤 꾹꾹 눌러 쓴 글씨로 담겨 있다. 특히 수강생 중 1명을 제외하면 전원 여학생인 탓에 시집살이의 애환도 짙게 배어 있다.

“시어머니 몰래 연필에 침 발라／ 글자 공부하다가／ 그만 들켜버리니／ 기름 많이 쓴다고／ 호통을 치신다”(호롱불) “시조모님은 내가 머리 빗으면 인물 없는 것이／ 거울 본다고 뒤에서 주먹 쥐고 때리는 시늉을 하니”(새댁시절)라거나 “92살에 한글 배우니 와이리 좋노／ 손가락 펴고 산수 배우니 와이리 좋노”(와이리 좋노) 등이다.

유교 사상의 여파로 강한 남아선호사상이 남아 있다 보니 ‘여자가 무슨 공부냐’는 인식이 많아 학교에 가고 싶어도 못 간 할머니들이 많았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런 만큼 어르신들에게 한글을 깨치는 즐거움은 각별하다.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들은 아침 8시부터 굽은 허리를 ‘구루마’(손수레)에 의지해 경로당과 마을회관으로 달려오곤 한다는 게 5년 차 교사 조금출(여·63) 씨의 설명이다. 조 씨는 “‘내가 이 나이에 대통령 될끼가. 한글은 머할라꼬 배우노’ 하며 냉담하던 어르신들이 ‘선생님요, 몇 번 읽고 몇 번 쓰라 그랬니껴?’라며 밤늦게 전화를 걸곤 하신다”며 밝게 웃었다. 조 씨는 총명하던 어르신이 갑자기 받침을 거꾸로 쓰거나 기력이 눈에 띄게 없어질 때 치매 초기임을 눈치채고 단체 카톡방을 통해 자식들에게 알려 치매 악화를 막은 일도 있었다고 전했다.

안동시는 거동이 불편하고 교통수단 이용이 마땅치 않은 어르신들을 위해 2014년부터 읍·면 단위 마을 경로당 등에 직접 글쓰기 교사를 ‘배달’해 주민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 2014년에는 3개 교실 학생 47명으로 시작했다가 호응이 큰 만큼 올해에는 대상자가 대폭 확대된다. 진재경 안동시청 평생교육새마을과 주무관은 “올해에는 14개 전 읍·면에서 300여 명으로 대상자가 확대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찾아가는 한글 배달 교실은 오는 4월 초 ‘통합 개강식’을 연다.

김수민 기자 human8@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