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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이, 토냐’

릴레함메르동계올림픽을 앞둔 1994년 1월 미국 여자 피겨스케이팅 금메달 후보 낸시 케리건이 국가대표 선발전 직전 괴한이 휘두른 몽둥이에 무릎을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미 연방수사국(FBI) 조사 결과 이 괴한은 케리건의 라이벌인 토냐 하딩의 전 남편이 고용한 것으로 밝혀졌고, 하딩은 올림픽 이후 자신이 사건에 직접 개입했다고 시인해 미국피겨스케이팅연맹에서 영구 제명됐다.

8일 개봉하는 영화 ‘아이, 토냐’(감독 크레이그 질레스피·사진)는 이 사건을 중심에 두고, 미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트리플 악셀에 성공하며 피겨 스타로 급부상했다가 졸지에 ‘악녀’가 돼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하딩의 삶을 다큐멘터리 픽션 형식으로 풀어냈다.

하딩이 어떤 환경에서 자랐고, 어떻게 정상에 올랐으며 또 어떤 아픔을 겪었는지를 묵직한 시선으로 따라가지만 감각적 편집과 블랙코미디 톤의 전개가 흥미진진한 재미를 선사한다. 어이없는 표정으로 웃다 보면 가정과 가족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영화는 토냐(마고 로비)와 그의 어머니 라보나 골든(앨리슨 재니), 전 남편 제프 길룰리(세바스찬 스탠), 보디가드 션 에카르트(폴 월터 하우저) 등의 진술을 바탕으로 ‘B급 인간극장’을 펼쳐냈다.

폭력과 폭언을 일삼는 라보나의 손에 이끌려 4세 때 빙판에 간 토냐는 학교도 그만둔 채 독기를 품고 연습에 몰두해 1991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트리플 악셀을 선보이며 주목받기 시작한다.

열다섯 살 때 제프와 결혼한 토냐는 제프의 폭력에 시달리며 그를 피하지만 폭력을 사랑의 표현으로 정당화하는 그에게서 헤어나지 못한다. 이런 환경에서 거칠게 자란 토냐는 최고의 기술을 구사해도 우아하지 않다며 제대로 점수를 주지 않는 심판에게 직접 따지다가 심판들의 눈 밖에 난다. 토냐가 케리건의 등장에 불안해하자 제프와 션은 케리건에게 겁을 주기로 한다.

실제 인물과 닮은 배우들의 명연기가 영화의 맛을 한껏 살렸다. 아마추어 아이스하키 선수인 마고 로비는 5개월간 연습해 피겨스케이팅 장면을 자연스럽게 소화해냈다. 앨리슨 재니도 모성애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악한 엄마 캐릭터를 천연덕스럽게 표현해냈다. 여기에 세바스찬 스탠의 지질한 남편 연기가 더해져 흥미로운 ‘막장 드라마’가 완성됐다. 특히 이 영화의 제작에도 참여한 로비는 토냐 하딩의 다큐멘터리 등 철저한 자료 조사를 통해 미디어와 대중이 각자의 입맛대로 만든 가십의 모순을 지적한다. 토냐의 마지막 대사에 마녀사냥에 희생당한 여인의 절규가 담겨 있다. “진실 같은 건 없어요. 전부 개소리죠. 모두에겐 자신만의 진실이 있고, 삶은 제멋대로 흘러갈 뿐이에요.” 청소년 관람불가.

김구철 기자 kc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