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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영 서울대 명예교수 국제정치학

지난 17일 캐나다 밴쿠버에서 회동한 한국과 미국·캐나다 등 6·25전쟁 참전·지원 20개국 외교장관은 ‘한반도 안보와 안정 및 북한’에 관한 회의를 열고 공동 의장성명을 발표했다. 의장 성명은 남북대화의 진전을 지지하며, 지속적 긴장 완화로 이어지기를 희망한다면서 (북핵 문제 해결에) 외교적 해법이 필수적이며 가능하다고 밝혔다. 또, 북한이 해상에서 선박 간 이전을 통해 불법 환적(換積)하는 것을 차단하는 조치를 포함해 북한의 해상 밀수를 차단하기로 합의했다면서, 대북 제재의 효과적 이행을 위해 북한의 범죄행위와 사이버 활동을 통한 자금 마련을 방지하기로 한 강경책을 명시했다.

밴쿠버 외교장관회의 핵심은 평화 공세를 통해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와 고립화를 탈피하려는 북한의 저의와 전략 무산 및 강력한 대북 제재 이행으로 요약된다. ‘밴쿠버 그룹’은 한반도에서 자유 수호를 위해 엄청난 희생을 치른 동질성을 지닌 우방들이다. 이들이 한반도 위기 상황을 재검토하고 북한 핵·미사일 위기 해법을 모색한 것은 감사한 일이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개회사에서 “동맹에 균열을 내려는 북한의 시도는 허용되지 않을 것이며, 북한이 신뢰할 만한 비핵화 조치와 함께 대화 테이블로 돌아올 때까지 더 큰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틸러슨 장관은 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외교적 해법을 택하지 않으면, 스스로 군사 옵션의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미국과 보조를 맞추는 일본의 고노 다로 외무상은 “북한의 남북대화 참여를 위한 대북 제재 완화 및 원조 제공은 너무 순진한 의견”이라며, 대북 강경책을 역설했다. 그는 북한의 대화가 핵·미사일 개발을 위한 ‘시간 벌기’라며,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결정적 조치를 취할 때까지 압박을 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은 북한의 예술단·응원단 파견 등을 통한 심리전 전개에 에 대해서도 몹시 비판적이다.

강경화 외교장관은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대북 ‘관여와 비핵화 유지’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한국 입장을 밝혔다. 그는 북한 비핵화가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 구축을 위한 핵심 요소이며, 한국 정부를 넘어 국제사회 전체의 변함없는 목표라는 점도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는 평창올림픽을 활용해 대화 주도권을 잡고, 미·북 간 무력충돌을 방지하며, 중·러와 관계를 강화한다는 환상(幻想)에 젖어 있다.

문 정부의 이러한 대북 구상과 희망적 사고는, 북한에 여러 번 속아 이미 북한 정권의 본질과 행태를 충분히 파악하고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할 때 호전적 북한을 다룰 수 있다는 사실을 간파한 미국의 대북정책과 심각한 갈등을 빚는다. 문 정부는 외교 안보에 관한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고 있으며, 북·중에 대한 비판을 삼가고 있다.

북한은 남북회담장에서 비핵화를 언급도 말라는 식으로 윽박지르고, 신년 기자회견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압박 공을 인정한 문 대통령에 대해 “잔칫상이 제사상이 될 수도 있다”고 위협했다.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는 미국과의 무력충돌 모면과 핵·미사일 개발을 위한 시간 벌기 전략에서 나온 것이다. 너무 호들갑 떨 필요가 없다. 핵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북한에 대한 그릇된 인식과 지나친 기대는 한국의 외교 안보를 망치기 십상이다. 문 정부는 북한의 간교한 전략·전술에 휘말리지 말고, 우리 사회 및 동맹국들의 우려와 건전한 비판을 경청하고 겸허히 수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