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법 개정·적용하려면
먼저 가상화폐 거래 인정해야
정부 딜레마… 관리·감독 방관
국회는 국민·정부 눈치보기만

가상화폐 시세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려 폭리를 취하는 시세조종행위에 대한 처벌에 사각지대가 있어, 공백을 해소하기 위한 입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정부는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 가능성까지도 열어두고 있다며 강력한 대응을 시사하고 있지만, 정작 가상화폐 ‘개미투자자’의 손해가 가장 막심한 시세조종행위에 대해선 수수방관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법무부와 검찰에 따르면, 현재 가상화폐 거래 시장은 시세차익을 노린 투기 외에도 조직적 매수·매도로 가상화폐의 시세를 조종하려는 시도가 만연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정부가 가상화폐 거래 금지를 포함한 파격적 대응을 시사할 때마다 되레 조직적 매수·매도가 더욱 활발해진다는 분석도 나온다.

◇자본시장법 적용하려면 가상화폐 인정해야 하는 딜레마 = 법무부는 가상통화 채굴을 빙자한 투자 사기, 가상통화 거래자금 환치기 등 다양한 유형의 가상통화 거래 범죄에 대해 엄정 대처할 것을 검찰에 지시한 바 있지만, 시세조종행위는 규제 대상에서 빠졌다. 가상화폐 거래에 칼을 빼 든 정부가 유독 시세조종행위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는 이유는 시세조종행위를 규제하려면 우선 가상화폐 거래를 주식 거래처럼 법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딜레마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현재 주식의 시세조종행위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을 통해 처벌하고, 손해까지 배상하도록 하고 있다. 이 조항이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에도 적용되려면 가상화폐 거래를 주식 거래와 동일하거나 유사하게 인정하는 방향으로 자본시장법을 개정해야 한다. 그러나 법무부가 준비 중인 ‘가상증표 거래 금지에 관한 특별법’은 가상화폐와 중개소를 통한 가상화폐 거래를 법적으로 금지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가상화폐의 문제점과 대응방안에 대해 다각도로 고민하고 있다”며 “필요한 대응책을 조만간 내놓을 것”이라고 밝혔다.

◇국회·검찰도 눈치 보기 속 무대응 일관 = 국회도 가상화폐 시세조종행위 등을 처벌하는 입법 활동에 손을 놓고 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현재 가상화폐 규제와 관련된 법 개정안은 단 한 건도 발의되지 않은 실정이다. 여야 모두 무책임한 ‘눈치 보기’만 이어가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검찰 역시 가상화폐 시세조종행위에 대해서는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자본시장법을 유추 적용해 기소하더라도, 현행법체계 상으로는 유죄가 인정될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반면 가상화폐 거래 자체에 대한 처벌 준비는 착실히 진행되고 있다. 법무부가 마련한 특별법 초안에 따르면, 정부는 가상증표를 도박과 유사하게 보고 처벌할 가능성도 열어뒀다. 특히 자본시장법에 ‘주식거래에 대해서는 도박죄를 적용하지 않는다’고 규정된 것과 달리, 가상화폐 규제를 위한 특별법에는 이런 예외 조항을 두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