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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논설위원

‘을숙도에 가서／ 자유롭게 날으는 새를 보면서／머리카락이나 흩날리고 싶었다／ 새는 바람을 타지만／ 바람 속에 삭아가는／ 나는 시간을 타고 있구나／ 강물과 질펀한 황혼과／ 일출처럼 이제 일몰이 시작된다.’ 부산에 있는 국립 부경대 총장을 지낸 시인 강남주의 시 ‘새와 머리카락’ 앞부분이다. 머리카락을 바람·자유·세월 등과 접목해 시로 읊은 시인은 그 밖에도 드물지 않다. 머리카락의 상징성이 크기 때문이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되도록’으로 백년해로(百年偕老) 등을 표현하는 것도, 불교에서 머리카락을 ‘무명초(無明草)’로 일컬으며 욕망과 번뇌의 상징으로 여기는 것도 그런 예다. 황재형(66) 화백이 캔버스에 머리카락 수천, 수만 개를 붙이는 방식으로 인물과 풍경 등을 ‘조형(造形)’하는 그림을 시도한 것도 그 상징성 때문이다.

중앙대 회화과를 졸업한 민중미술 1세대인 그는 열악한 환경 속에 치열한 삶이 두드러지는 탄광촌을 드나들며 작품 활동을 하다가 1983년 아예 광부로 변신해 강원 태백시 탄광촌에 정착했다. “소설가 황순원이 ‘예술로 드러내야 할 것은 누이의 누런 이’라고 했던 취지를 좇아 탄광촌에서 인간의 순수한 심성을 끝없이 찾아 헤맸다”고 한다. 물감 살 돈이 없어 황토·백토와 석탄을 섞어 쓰며, 탄광촌의 고단함과 따뜻함이 교차하는 삶을 독특한 방식으로 묘사한 그림이 크게 주목받으며 ‘광부 화가’ ‘탄광 화가’ 등으로 불려온 그는 폐광촌이 된 현재도 그곳을 떠나지 않고 있다. 2015년엔 ‘머리카락 회화’라는 새 장르를 창출했다.

“우리 안의 순수한 심성, 진정한 인간 정신을 찾고 싶어서 선택한 재료가 머리카락”이라는 그는 이렇게도 말한다. “머리카락은 인간 최초·최후의 옷이다.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 어떤 역사를 갖고 있는지, 모조리 기록하고 있다. 추억과 경험, 사랑과 증오, 고통과 한(恨), 기쁨과 슬픔, 미래에 대한 의지와 꿈 등이 담겨 있다.” 그는 7년 만의 개인전인,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지난 12월 14일 시작해 오는 28일까지 계속되는 ‘10만 개의 머리카락’ 전에 그런 작품 28점을 선보였다. 황 화백이 ‘삶을 진실 되게 마주하는 모든 이에게 보내는 연서(戀書)’라고 의미를 부여하는 작품들 앞에 서면, ‘순수하면서 치열한 삶’의 모습에 대한 미학적 표현의 가치를 새삼 경이롭게 생각하게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