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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복 소설가,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국립한국문학관 건립법 통과후
지자체 유치 경쟁 과열 부작용

문체부 토론회·공청회 거쳐
용산을 최적지로 결정했지만

서울시 난데없는 반대로 제동
양측 최상의 합의점 도출해야

지난 2015년 12월 31일 국회에서 문학진흥법안이 통과됐다. 세모에 날아든 희소식이었다. 노상 드잡이나 해대는 국회의원들도 문학에 대해 조금은 관심을 가져주는 듯했다. 이 법은 이듬해 2월 4일 법률 제13961호로 공포됐다. 반가웠다. 이제야 비로소 문학이 종전보다는 좀 활력을 얻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실, 미술·영화·출판 등 다른 문화예술 분야의 관련 법률은 오래전부터 효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하지만 문학을 위한 법률은 그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문학은 언제부턴가 점점 침체의 길을 걸어왔고, 근래 가위 영양실조에 걸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죽자사자 작품을 써서 책을 내도 팔리지 않는다. 일반 국민의 관심이 문학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문학진흥법이 제정된 것은 누가 뭐래도 충분히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법률에 명시된 문학진흥기본계획 수립과 시행에도 기대가 컸지만, 특히 ‘국립한국문학관’ 설립에 관한 조항은 세인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한편, 문화체육관광부는 그해 5월 국립한국문학관 건립 부지 공모에 들어가 광역지방자치단체별로 2개소 이내에서 후보지 신청을 받았다. 그 결과 전국 24개 지자체에서 국립한국문학관 유치에 뛰어들었다. 경쟁이 치열했다. 어떤 지역에서는 국립한국문학관 유치 주민 서명운동을 벌였고, 또 어떤 지역에서는 수백 개의 플래카드를 내걸고 풍악을 울리며 대대적인 유치 결의 집회를 열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지역에서는 정치권의 유력 인사들까지 동원해 자기네 지역으로 국립한국문학관을 끌어들이기 위해 극렬한 힘겨루기에 나섰다.

유치 경쟁은 급기야 과열로 치달았다. 전국이 들썩거렸다. 지자체들이 과연 언제부터 이처럼 문학관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는지, 아무튼 국립한국문학관 건립 문제는 심상찮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지자체의 들끓는 과열 경쟁 앞에서 문체부도 속수무책이었다. 문체부의 부지 공모는 이렇듯 결정적 패착으로 확인됐다.

그때 국제펜클럽한국본부·한국문인협회·한국소설가협회·한국시인협회·한국작가회의 등 5개 문학단체가 기자회견에 나섰다. 이 단체들은 마침내 국립한국문학관 건립 부지 선정을 둘러싼 문제의 심각성을 깊이 인식하고 공동 입장을 정리, 발표했다. 그 골자인즉 국립한국문학관 건립 부지 선정은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공간으로서 상징성, 미래를 내다보는 확장성, 전 국민이 향유할 수 있는 접근성,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지향하는 국제 교류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와 함께 문학단체들은 국립한국문학관 건립 부지 선정에 그 어떤 정치적 개입이나 지역 안배 논리가 끼어들어선 안 된다고 일침을 가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그러면서도 약간은 성향을 달리하는 이들 문학 5단체가 분연히 일어나 이처럼 한목소리를 낸 것은 사상 처음이었다. 벌써 재작년 5월 23일의 일이다.

그로부터 약 한 달 뒤인 6월 24일, 문체부는 국립한국문학관 건립 추진을 잠정 중단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밤잠을 설치면서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 유치 경쟁을 벌였던 관련 지자체들은 어쩌란 말인가. 극단적으로 말해서 그건 해당 지자체를 우롱하는 처사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문체부가 모든 계획을 원점으로 되돌린 것은 상황 악화와 국론 분열을 막기 위한 일종의 고육책인 셈이었다.

그 후 각 지자체의 국립한국문학관 유치 경쟁은 대통령 탄핵 정국과 맞물려 일단 물밑으로 가라앉았다. 이 과정에서 문체부는 그해 8월 문학진흥특별전담팀(TF)을 구성해 여러 차례 회의와 지역순회 토론회·공청회 등을 개최했고, 지난해 2월에는 문학진흥법에 따른 문학진흥정책위원회를 본격적으로 가동했다.

이 위원회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인 지난해 9월 제3차 회의에서 물망에 오른 서울의 네 곳 중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 인접한 문체부 관할 국유지를 국립한국문학관 건립의 최적지로 심의·의결했다. 이 후보지는 일찍이 문학 5단체가 제시한 조건 이외에 그동안 공론화 과정에서 수렴된 중론과도 가장 부합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웬걸, 서울특별시가 난데없이 제동을 걸었다. 박원순 시장은 지난해 11월, 미군기지가 반환되면 가족공원과 그 일대를 환경생태공원으로 조성하겠다면서 국립한국문학관이 용산에 건립되는 것을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이제 국립한국문학관은 어디로 가야 하나.

서울시의 주장은 일견 그럴듯하지만, 지금 거론되는 부지는 미군기지 영외이고, 그곳에 이미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한글박물관이 있다는 사실까지 부인할 수는 없다. 또, 국립한국문학관이 들어선다 한들 그 방대한 공원 부지를 전부 차지하는 것은 아니다. 기존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한글박물관이 자연환경을 해치지 않는 것처럼, 그 자리에 국립한국문학관이 추가된다고 해서 서울시가 구상하는 생태공원 그 자체를 원천적으로 훼손하는 것도 아니다.

자, 이제는 국가 백년대계를 생각해야 할 때다. 문학진흥정책위원회가 여러 자료를 종합 검토해 심사숙고 끝에 최적지로 낙점한 그곳에 국립한국문학관이 건립된다면, 국립중앙박물관·국립한글박물관·국립한국문학관이 서로 이웃하면서 그 일대가 우리 겨레의 ‘얼’과 ‘글’과 ‘말’을 절묘하게 아우르는 성지로 거듭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런 점에서 문체부와 서울시는 머리를 맞대고 ‘끝장토론’이든 ‘막장토론’이든 허심탄회하게 의논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최상의 합의점을 도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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