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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 요구하니 “수거비 내라”… 소비자 우롱하는 ‘불량 렌털’

윤명진 기자 | 2017-10-12 10:57

일러스트=김연아 기자 yuna@ 일러스트=김연아 기자 yuna@

인기업고 급성장한 안마의자
렌털 불만 2년새 57.5% 늘어
작년 불편상담 건수 가장 많아
정수기·의류 등 피해품목 다양

상담원이 전화로 빠르게 진행
불리한 규정 동의할 때 주의를
제조업체와 렌털 회사 분리돼
책임 떠넘기면 소비자만 골탕


#1. 경남 진주에 사는 배모(여·32) 씨는 A 브랜드 음식물 처리기를 대여해 8개월 정도 사용했다. 이후 제품에 고장이 나 애프터서비스(AS)를 받기 위해 제조사에 연락을 했고 부도가 난 사실을 알게 됐다. 배 씨는 수소문 끝에 제품 대여(렌털) 업체에서 AS를 해주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문의했더니 해당 업체는 신청자가 많아 3주 정도를 기다려야 한다고 응대했다. 배 씨는 불편을 감수하면서 3주를 기다렸지만 업체로부터 AS가 불가능해 무상 계약해지를 할 수밖에 없다는 답변을 듣게 됐다. 배 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이를 받아들였지만 업체는 위약금과 수거비 등을 요구하며 차일피일 계약해지를 미뤘다. 배 씨는 결국 한 달이 더 지나서야 소비자단체 중재를 통해 겨우 무상으로 계약 해지를 할 수 있었다.

#2. 350만 원짜리 안마의자를 빌려 월마다 사용료를 냈던 최모(67) 씨는 1년 뒤 생각보다 제품을 많이 사용하지 않자 계약 해지를 요구했는데 과도한 위약금을 물어야 했다. 렌털 업체는 최 씨에게 남은 계약 기간 임대료의 20%인 위약금을 비롯해 수거비, 등록비 등의 명목으로 약 80만 원을 요구했다. 최 씨는 부당함을 느꼈지만 따로 대안이 없어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정수기와 안마의자부터 해외 고가 패션 브랜드와 미술작품까지 최근 다양한 상품 관련 렌털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소비자 피해 사례도 덩달아 급증하고 있다.

중소 제조사나 렌털 업체들이 부도로 사업을 접게 되면서 AS 서비스 등을 중단하거나, 업체의 홍보와 달리 상품의 질이 소비자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경우, 계약 해지를 요구하면 과다한 위약금을 물려 소비자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경우 등이 흔히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최근 한국소비자원이 렌털 상품 이용 관련 소비자 불만 건수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010년 6164건, 2011년 9026건, 2012년 8655건, 2013년 1만465건, 2014년 1만2000여 건으로 매년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소비자원은 2015년부터는 소비자 불만 집계도 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추세로 봤을 때 현재는 불만 건수가 더욱 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대표 렌털 품목으로 꼽히는 안마의자와 정수기만 봤을 때 최근까지 소비자 피해가 크게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소비자원에 접수된 안마의자 렌털과 관련한 불만 상담은 2014년 40건, 2015년 43건, 지난해 63건으로 2년 사이 57.5%나 급증했다. 지난해의 경우 과도한 위약금과 추가비용 요구 등과 관련한 피해상담이 39건(61.9%)으로 가장 많았다. 정수기 렌털 관련 피해 건수도 2014년 232건, 2015년 328건, 지난해 550건에 이어 올해 6월까지 벌써 284건이 접수됐다. 지난해 피해 사례 중 401건을 추려 유형별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정기적인 관리서비스 불이행 또는 불완전이행’이 154건(38.4%)으로 가장 흔하게 발생했다. 이어 ‘성능 등 제품 관련’ 98건(24.4%), ‘설명과 다른 계약조건 적용 등 계약 관련’ 51건(12.7%) 등이 차례로 뒤를 따랐다.

이 같은 피해 사례는 렌털 시장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KT경제경영연구소는 국내 렌털 시장 규모가 2011년 19조5000억 원에서 지난해 25조9000억 원을 기록한 데 이어, 2020년에는 40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했다. 2011년에서 2020년까지 불과 9년 만에 시장이 약 105%나 성장할 것이란 전망이다. 경기 불황과 1인 가구의 증가로 소비 패턴이 소유에서 공유로 변화하는 추세인 데다, 상품에 대한 경험에 가치를 두는 인식이 퍼지며 렌털 시장이 유망 산업으로 주목받고 있다는 분석이다.

시장이 커진 만큼 취급 품목도 다양해져 정수기, 유아용품을 비롯해 명품 가방과 의류,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 저주파 마사지 기계, 3D 프린터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한국렌털협회가 추산한 국내 렌털 업체는 2만4000여 곳에 이른다. 상품이 다양해지는 만큼 피해를 겪는 소비자들도 늘고 있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고 다수 소비자단체는 조언했다. 결국 렌털 제품을 사용하는 소비자 스스로 총 계약 기간과 의무사용 기간, 위약금 산정기준 등 중요사항을 확인하고, 총 렌털비와 일시불 구입가를 꼭 비교해 본 후 계약할 것을 당부했다.

소비자원 관계자는 “렌털 계약은 대부분 전화로 상담원이 빨리 진행하기 때문에 소비자 자신도 모르게 위약금 규정이나 세부 항목에 동의하는 경우가 많다”며 “소비자가 일단 동의를 했기 때문에 구제가 어려운 경우가 많아 계약을 하기 전 조건들을 꼼꼼하게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여준상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렌털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한 것에 비해 소비자 권익 보호를 위한 법령 등은 아직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며 “렌털의 경우 제조업체와 서비스 업체가 분리돼 있어 책임 떠넘기기가 쉽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부분에 대한 소비자보호법 등의 재정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윤명진 기자 jinieyo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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