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툭하면 기업 팔목을 비틀어 돈을 내라는 식의 구태가 문재인 정부에서도 되풀이될 조짐이 보인다. 그러지 않아도 문 정부 정책을 놓고 반(反)시장·친(親)노동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산업 정책의 주무 기관인 산업통상자원부마저 기업 압박에 나서면 매우 심각한 문제다. 산업부는 지난 15일 현대자동차 등 완성차 업체 3곳과 LG전자·SK텔레콤 등 5개사를 소집해 ‘미래형 자동차 연구·개발(R&D) 전문인력 양성’ 사업 협조를 종용했다고 한다.

문 정부는 임기 5년 동안 자율주행차 분야에서 180명의 석·박사 인력을 육성한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이를 위해 산업부 관계자가 “500명으로 늘리는 것을 고려 중”이라며 업계가 매칭펀드 방식으로 참여해달라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180명을 양성하는 데 75억 원이 드는 것을 감안하면 추가 소요액만 100억 원이 훌쩍 넘는다. 논란을 빚자 산업부는 “실무진 차원의 아이디어”라고 했지만, 기업들로선 돈 내라는 노골적인 압박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문제의 정부 프로젝트는 이날 불려온 기업들엔 별 관심사가 못 된다. 자동차·IT 대기업은 미래가 걸린 자율주행차·전기차 등에서 대대적인 기술 투자와 함께 전문인력을 키우는 자체 프로그램을 가동 중이다. 다만, 중소·중견 부품업체를 위해 정부가 대학·단체와 손잡고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일은 필요하다. 대신 비용은 전액 정부 예산으로 부담하는 것이 옳다. 이 일이 아니어도 문 정부 들어 산업정책이 실종됐다는 비판을 받는다. 게다가 자동차 업계는 통상임금·사드·노사분규 등 사면초가 처지다. 권력을 업고 기업 돈을 뜯어낸 국정농단 재판도 진행 중이다. 산업부 발상이 참으로 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