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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利他的 유전자’가 600만년간 인류를 생존케 했다

최현미 기자 | 2017-07-14 11:05

인간의 위대한 여정 / 배철현 지음 / 21세기 북스

“그들은 예술에 관한 모든 것을 발견했어!” 파블로 피카소가 1948년 프랑스 도르도뉴 데파르트망 마을의 라스코 동굴을 방문해 쏟아낸 감탄의 말이다.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1만700년 전에서 1만5000년 전 사이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라스코 동굴 벽화. 고전문헌학자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는 피카소로부터 경탄을 토해 내게 한 라스코 벽화가 잊어버린 우리, 잘못 알고 있는 우리 인간에 대해 많은 것들을 들려준다고 한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주로 동굴에 살았지만 라스코 동굴에는 사람이 생활한 흔적이 없다. 거주지가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는 공간이었다는 말이다. 멀고 먼 그 당시 가장 뛰어난 예술가였을 극소수 현생 인류는 몸이 겨우 들어갈 만한 비좁은 통로를 지나 칠흑같이 어두운 동굴 깊숙이 들어가 동물을 그렸다. 인류 역사에서 예술로 평가받는 벽화 작업은 라스코 벽화를 넘어 3만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들에게 동굴과 벽화는 무슨 의미인가.

배 교수는 3만2000년 전, 인류는 처음으로 일상과 단절된 어두운 곳에 들어가 자기 자신에게 몰입했다고 한다. 우주에 대한 경외와 생명의 신비, 자신의 존재 의미에 대해 묵상하며 존재 이유를 물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들이 던진 질문은 이런 것들일 게다. 나란 존재는 무엇인가. 죽음 이후의 삶이 있는가. 동물에게 영혼이 있는가.

동물을 그리는 행위 역시 자신과 함께 공생하지만, 때로는 생존을 위해 죽여야 하는 자연의 순환에 대한 묵상이었다고 배 교수는 말한다. 라스코 벽화를 처음 분석한 예술사학자 앙리 브뢰이유가 라스코 동굴을 ‘선사시대의 시스티나 성당’으로 불렀던 것과 궤를 같이하는 성찰이다.

라스코 동굴 벽화에는 인류의 여러 원형적 모습이 연결되고 겹쳐진다. 의례를 하는 인간, 조각하는 인간, 그림 그리는 인간, 영적인 인간, 묵상하는 인간, 그리고 종교적 인간. 이들로 인해 책의 제목인 ‘인간의 위대한 여정’이 시작됐다.

책은 저자가 137억 년 전 우주 탄생부터 1만 년 전 농업혁명 이전 현생 인류까지 역사를 추적한 빅히스토리이다. 탄탄한 인문학적 기초 위에 진화생물학, 뇌과학, 고고학, 인류학 등 학계의 가장 최신 연구 결과를 섭렵하고 이들 지식을 다시 철학, 고전, 예술 등 인문학적 통찰과 결합해 흥미롭게 인류의 먼 역사를 써내려간다. ‘농업혁명 이전’이라는 시간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리는 흔히 인류가 1만 년 전 농업혁명을 이루고 정착한 뒤 도시와 문화, 언어와 종교 같은 인간을 구성하는 기본 특징들이 생겨났다고 이야기한다. 농사짓기 위해 정착하면서 도시가 생기고 종교가 발생했다는 식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 시나리오를 완전히 뒤엎어, 호모 사피엔스는 문명 이전에 이미 위대한 인간의 원형을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무기를 만들었지만 무기를 서로에게 겨눠 파국에 이르지 않았던 ‘배려하는 인간’이었고, ‘영적인 인간’이었으며 종교의 기원 이전에 이미 ‘묵상하는 인간’이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전제 아래 저자는 ‘인간의 역사’에서 인간을 위대하게 만드는 원형적 면모를 차례로 살핀다. 저자는 인류가 동물과 다르게 위대해진 결정적 계기를 600만 년 전 직립 보행으로 봤다. 이어 260만 년 전 기획하는 인간, 100만 년 전 불을 다스리는 인간, 75만 년 전 달리는 인간, 50만 년 전 요리하는 인간, 30만 년 전 배려하는 인간, 17만6000년 전 의례를 하는 인간, 4만5000년 전 공감하는 인간, 3만5000년 전 조각하는 인간, 3만2000년 전 영적인 인간, 1만7000년 전 묵상하는 인간, 1만4000년 전 더불어 사는 인간, 종교적 인간으로 나아간다.


이 ‘위대한 인간’들은 각각 한 챕터씩을 차지하는데, 저자는 각각의 챕터를 쓰기 위해 ‘네이처’ ‘사이언스’지를 포함해 최소한 20∼30편의 논문을 읽었다고 한다. 글은 과학, 역사, 인류학, 예술학을 넘나들고 고대 셈족어와 인도-이란어 고전문헌학 전공자답게 어원에 담긴 뜻을 풀어내면서 원시 인류의 역사를 꿰뚫어 나아간다.

이렇게 인류의 역사를 뒤쫓으며 저자는 이 모든 위대함을 가능하게 만든 인간의 궁극적인 조건이자 인류 진화의 열쇠는 ‘이타적 유전자’, 인간에게 내재된 이타심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인간의 위대한 여정을 추동하는 힘은 바로 이타심이라는 것이다. 타인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여기는 이타심을 발현할 때 인간은 비로소 도약했다며 이 위대한 DNA를 발견하고 지켜온 노력의 역사가 바로 인간의 위대한 여정이라고 했다.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가회동의 인문학아카데미 ‘건명원’에서 만난 저자는 ‘인간의 번식도 유전자를 존속시키기 위해 프로그램된 행동일 뿐’이라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의 반대편에 서서 “모든 인간은 어머니로 대표되는 이타심의 결과이며 사람들은 누군가 나를 위해 목숨을 바치지 않았으면 생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논리가 개인의 일상까지 지배하는 시대에 “이타심이야말로 인간 안에 있는 위대한 보물이며, 스스로 자기 안의 위대한 보물을 발견하는 것이 우리의 희망”이라고 말했다.

뇌과학 인공지능(AI)의 발달로 인간의 자유의지마저 의심 받고 있는 시대에 저자는 우리가 진정으로 깊게 성찰해야 할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라며 과학적 발견의 기계적 해석에 균형감을 제공한다. 과학과 인문, 여기에 고전문학을 오가며 인류역사를 단단하게 구성해 독자들이 파편적으로 알고 있던 지식을 연결해 전체 지도를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책의 큰 미덕이다.

저자는 앞으로 농업혁명, 문자 등장, 알파벳 등장 등 인간의 위대한 여정을 탐색하는 작업을 10권 분량으로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배철현 교수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이타심이라고 했다. 김동훈 기자 dhk@ 구석기 시대의 시스티나 성당으로 불리는 라스코 동굴. 현생 인류가 이곳에 남긴 수많은 동물 그림은 자신들이 동물과 공생하는 존재임을 인식했다는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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